황장엽씨 향후 역할(서울에 온 주체사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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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4-23 00:00
입력 1997-04-23 00:00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파악해온 북한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황장엽씨가 북경에서 망명신청을 한 직후 정부 당국자가 말한 이 한마디는 황씨의 정보가치를 단적으로 말해준다.많은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 사회의 폐쇄적 성격과 관련한 그의 지위에 주목하고 있다.
황씨는 우선 지금까지 남으로 넘어온 북한 인사 가운데 최고위급(최고위때 권력서열 13위)이다.59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65년 김일성대 총장,70년 당중앙위원,72∼86년까지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3차례 역임했고 85년 이후엔 국제담당비서를 맡아왔다.그의 인생 역정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북한 정권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북한정권의 격변기에 이데올로기 정립을 주도,주체사상을 체계화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는 북한의 이념 및 권력투쟁사를 파악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황씨는 또한 김정일의 스승이었고 김정일가의 숨겨진 이면사를 꿰고 있을수 있으며 특히 지금도 풀리지 않은 김일성의 사인을 포함해 김일성사후 2년7개월간의 권력 동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가 이른바 「황장엽리스트」와 같은 구체적인 명단을 갖고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입을 통해 남한내 친북세력이 규명된다면 남과 북을 함께 뒤흔들수 있는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연 그가 자신의 머리속에만 꼭꼭 간직한 정보의 보따리를 얼마나 풀 것인가이다.
정부는 일단 황씨가 『민족을 불행에서 구원하기 위해 남의 인사들과 협의하고자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힌 망명동기에서 희망적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자신의 정보를 희망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주면 자발적 정보제공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황씨에게 정부의 대북정책 자문역이나 연구분석역 등을 맡기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는 월북한 최덕신 전외무장관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혀 융숭한 대접과 함께 선전에 이용한 적이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이용의 배제라는 차원에서 공직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도운 기자>
1997-04-2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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