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광군과 여금주양(송정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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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1-30 00:00
입력 1997-01-30 00:00
어떤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 아이들이 희망임을 확인하게 해준 것이 해광군이다.극도의 굶주림과,부모와 「위대한 지도자의 품」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깊이 천착한 그의 탈북일기는 놀랍고 영특한 기록이다.

그 일기를 통해서는 그의 어린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정든 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이 보인다.어떤 것은 우리에게서는 진작에 풍화해버려 잊혀진 것들도 있다.그 진솔한 본모습을 북에서 온 어린 소년의 일기에서 읽을수 있다는 일이 신기하다.

○북한 소년의 일기 “진솔”

해광군에 앞서 역시 일가족 탈북의 일원인 여만철씨의 딸 금주양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최근의 일이다.『따뜻한 남쪽』에 와서 몇해를 보냈고 남쪽의 대학생이 된 그가 그동안 「적응」하며 겪은 것들이다.

처음 남쪽의 친구들은 자신을 경계하듯 접근하지 않았다.나중에 안 일인데 남쪽 친구들은 그가 무서웠노라고 했다.『왜서 내가 무서웠는지….오히려 내가 무서웠음 무서웠지…』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라고 했다.남쪽 친구들이 마음을 열어 서로 어울리게 되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무슨 노래가 좋은가』 묻길래 「설운도씨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쩌면 그런 노인네 노래를 좋아할수 있는가』고 막 웃는 통에 무안했었다는 것이다.

그 노래를 좋아한 것은 북쪽에서부터였고 북쪽의 친구들과 함께 그노래를 좋아했던 시절을 그는 추억으로 지니고 있다.그 추억이 그들의 「남쪽선택」의 기쁨이기도 했고 그때문에도 남쪽의 삶이 행복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정작 남쪽에서는 그것이 놀림감이 된 것은 그를 쓸쓸하게 했던 것 같다.

금주양의 초등학생 남동생이야기도 있다.공부가 끝난 하학시간에 체조를 잘하는 남동생은 철봉에 매달려 여러가지 장끼를 남쪽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남쪽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그런데 어쩌다 동생은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그러자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친구들은 모두가 모른척하고 가버렸다.동생은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북에서 같으면 들쳐업고 병원엘 가든가 어찌라도 했지 그렇게 혼자 팽개치고 가버리지는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그와 그 가족들이 느낀 슬픈 결론이었다.

여러번 종용한 끝에 얻어낸 남쪽친구들에 대한 금주양의 비판은,학생들의 씀씀이가 많이 헤퍼보이고 허영스런데가 있는 것 같고 삭막한 느낌을 주며 『진실된 면』이 좀 모자란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남쪽을 선택한 「아버지」의 결단에 대해서 『지금이니까 할수 있는 말』은 남쪽을 선택한 일은 잘한 일인것같다는 것이다.그러고나서 그는 좀 망설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북쪽에서 보낸 모든 세월은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곤한다』는 것이었다.조그만 목소리로 『고향이랑 친구랑 좋은 사람도 많고 보고싶기도 한데…』 잦아들듯이 덧붙인 뒷부분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해광군의 일기에서 수도없이 되풀이되는 것도 『두고 온 동무들』이다.남쪽에서 「새동무들」을 사귀면 잊혀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순수한 영혼에 드리운 「그리움」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북에다 두고온 「지난날」을 『배고프고 괴로운 하찮은기억』쯤으로 여기는 남쪽의 무신경과 만난다면 그들은 얼마나 쓸쓸하고 노여울 것인가.『친애하는 지도자의 품』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국가 목표라는게 국민에게 『하얀 이팝에 고깃국』 정도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 수준인가를 알게되는 일은 금방 가능하다.

○탈북동포 따뜻이 대해야

그러나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됨의 정신자원은 그것과 별개다.그들에게 그렇게 간직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남쪽사람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그런 뜻에서는 탈북동포들의 남쪽적응만이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아니다.남쪽이 그들을 받기 위해서 적응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미리부터 대비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본사고문〉
1997-01-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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