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푸 한·일 정상회담합의내용과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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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1-26 00:00
입력 1997-01-26 00:00
25일 열린 벳푸 한·일 정상회담은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일본총리와의 「우의 다지기」가 돋보이는 행사였다.두 정상의 「우정」을 바탕으로 대북한 공조가 확고히 천명됐다.나아가 북한이 대만에서 핵폐기물을 반입하는 것을 한·일 양국이 공동저지키로 합의하는 「소득」까지 나왔다.한·일간에도 불·독과 비슷한 「선진국형 정상 협력모델」이 정착되고 있는 느낌이다.
김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는 이날 하룻동안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특히 만찬회담이 열린 「모미야」는 오래된 별장지에 위치한 유서깊은 음식점.두 정상은 기록원만 대동한 채 정말 「깊은 얘기」를 격의없이 나눴던 것같다.
회담에서 하시모토 총리는 일북관계개선이 남북한관계 진전을 앞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일본정부가 이제까지 해온 말의 반복인 듯 싶으나 이번에는 무게가 달라 보였다.두 정상간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한·일 정상간 대북한 공조는 대만핵폐기물 반입과 관련해 분명히 나타났다.김대통령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핵폐기물의 한반도 반입을 저지할 뜻을 표시하자,하시모토 총리도 즉각 적극 협조를 다짐했다.앞으로 핵폐기물문제가 북한과 대만,그리고 한·미·일 3국간 첨예한 현안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김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가 두번째로 강조점을 둔 것은 미래지향적 관계구축.「한·일 청소년교류 네트워크 포럼」사업을 실시키로 합의했다.오는 3월 양국의 학생과 민간 청소년단체,지방자치단체 인사들이 일본 오사카에서 첫 모임을 갖고 교류협력 증진방안을 논의키로 했다.2002년 월드컵공동개최를 앞두고 한·일 축구정기전을 부활키로 한것도 체육계뿐 아니라 전국민을 즐겁게 하는 결과다.
한·일 양국 정부는 당초 독도와 군위안부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었다.그러나 지난 24일 가지야마 일본관방장관이 『당시의 공창제도 등 사회배경을 가르치지 않고 위안부 문제만 가르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망언을 했다.우리측이 가지야마 관방장관의 발언에 강력대응할 움직임을 보이자 하시모토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먼저 이를 거론,3차례나 사과하는 자세를 보였다.하시모토 총리는 군위안부문제에 대해 민간차원의 배상을 한국측이 양해해달라는 입장을 아직 바꾸지 않고 있다.확대정상회담에서 「기록용」이긴 하지만 독도문제도 거론했다.김대통령은 즉각 『독도는 역사적·국제법적으로 우리 영토』라고 쐐기를 박았다.<벳푸=이목희 기자>
□문민정부 한·일 정상회담 일지
▲93년11월6∼7일=호소카와 총리 방한(경주)
▲94년3월24∼26일=김영삼 대통령 방일
▲ 〃 7월23∼24일=무라야마 총리 방한
▲ 〃 11월14일=무라야마 총리와 정상회담(인도네시아 보고르)
▲95년3월11일=무라야마 총리와 정상회담(덴마크 코펜하겐)
▲ 〃 11월18일=무라야마 총리와 정상회담(일본 오사카)
▲96년3월2일=하시모토 총리와 정상회담(태국 방콕)
▲ 〃 6월22∼23일=하시모토 총리 방한(제주)
▲ 〃 11월24일=하시모토 총리와 회담(필리핀 마닐라)
1997-01-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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