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운동을…/김춘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장(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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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1-11 00:00
입력 1997-01-11 00:00
정초에 우리집은 친척과 아이들로 시끄럽다.어느새 시부모님이 타계하시고 우리가 큰집이 되었기 때문이다.모인 식구들은 다들 한창 일할 나이에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읽고 있는 세상에 대해 적극적인 대화를 나눈다.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기생각이 다 옳다고 믿는 사실이다.그래서 토론은 재미있다.

우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시동생이 의료계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고 나섰다.모두들 듣고 있다가 『의료수가가 너무 낮다』는 대목에서 의료행위의 공급자와 수혜자로 가족은 갈라진다.병원에 갔을때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는 일이 얼마나 있길래 그러느냐는 반대의견이 나온다.나중에는 서로 이해한다는 표정은 짓고 있지만 속으로 시동생 의견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같은 직업을 가진 동서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다음은 대학 강사직을 포기하고 학원가로 뛰어든 시누이가 사교육 시장에서 받는 본인의 한달 수입을 말한다.입이 벌어진다.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버는 것에 비하면 그것은 부당하다고 모두 쌍수를 든다.그리고 잘 하는 아이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그 이유와 원칙들은 모두 옳다.아무도 양보를 안한다.시누이는 아직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그렇지 조금 지나면 마음이 달라질거라는 한마디로 그 화제는 다른 화제로 옮아갔다.

약국을 하는 작은 시누이가 근황을 이야기한다.제대로 알기만 하면 한약이든 양약이든 구별없이 약사가 팔면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다행히 한약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갔다.다음 교수직을 가진 몇 명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토로했다.또 한마디씩 하고 나섰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교육에 관해서는 항상 나에게 화살이 오게 마련이다.음악계 레슨에 대한 공격을 나는 늘 피할수 없다.

어떤 문제도 뾰족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가족이 이러할진대 이 사회야 오죽하겠는가.다른 방법이 없다.1997년에는 「함께 살기 운동」을 하는수 밖에.
1997-01-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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