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보편화」 아쉽다/이헌숙 문화부장(데스크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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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10-15 00:00
입력 1996-10-15 00:00
「문화의 달」인 10월 13일 저녁, 서울에선 가히 「세계적」이란 표현이 부족치 않은 빅 이벤트의 두 문화행사가 동시에 펼쳐졌다.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끄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우리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의 협연무대,또 하나는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이날 하오6시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운 4천여 청중이 세계적 협연에 매료되고 있는 거의 같은 시간대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가득찬 6만여 관중은 잭슨의 휘황찬란한 공연에 넋을 잃었다.

빈필을 초청한 MBC는 이례적으로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이 공연을 TV로 생중계하는 열의를 보였고 로얄석이 12만원이라는 고가의 잭슨 공연에도 6만여명의 인파가 찾아들어 외견상 많은 인구가 두 공연을 즐긴 셈이 됐다.

이들 두 공연의 만남은 『우리나라도 참 대단해졌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행사임에는 틀림없다.문화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이들 두 공연이 서울에서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은 생활수준에 걸맞게 이제 우리도 문화대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그러나 10월 「문화의 달」 의미를 다시한번 반추해보게 되는 씁쓸한 기분또한 떨쳐버리기 힘들다.

요란하게 매스컴을 장식한 두가지 빅이벤트가 일반 국민들과는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아울러 공비침투사건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한 탓도 있겠으나 「문화의 달」로 지정된 10월에 펼쳐지는 많은 문화행사가 국민들의 가슴에 와닿고 공감할 수 있는 게 과연 몇개가 될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문화」는 무엇인가?

다리의 난간이나 여백과 같다.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넌다고 하자.자전거 한대가 지나가는 궤적의 폭은 1m 안팎에 불과하지만 폭 1m 다리를 만들어 놓고 지나가라면 곡예사가 아닌 다음에야 이 다리를 지나기가 매우 어렵다.우리 인간의 고달픈 삶에 있어서 「문화」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바로 이 여백과 같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현대사가 우리의 삶속에 여백의 여유를 안겨주기엔 너무나 숨가쁘고 각박하게 흘러왔다.그러나 이제는 한숨 돌리고 국민 모두가 삶의 여백인 문화를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볼때 1년 매일이 문화의 날이어야 겠지만,그래도 정부가 「문화의 달」과 「문화의 날」을 제정하고 이를 기념하는 상징적인 의미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클래식과 대중문화가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현실의 「문화」는 일부 상류층이나 가진 자,그리고 문화인들의 전유물에 머물고 있는게 현실이다.정부가 10월 「문화의 달」에 231개의 크고 작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이는 뜻도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인 것이다.하지만 지금 당장 지나가는 누구든 잡고 『문화의 달에 펼쳐지는 문화행사 가운데 뭐 하나라도 가본 게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과연 몇명이 참여했다고 답할 수 있을까.

문화행정 주무부서인 문화체육부는 「문화의 달」에 이 점을 다시한번 깊이 돌이켜 보기 바란다.가장 평범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실현돼야할 과제인 「문화의 보편화」 「문화의 생활화」에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강구돼야 한다.이 점이 「문화의 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1996-10-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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