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협력의 균형」/레인 켄 워티(해외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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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9-15 00:00
입력 1996-09-15 00:00
◎협동심은 제도적 인센티브의 결과/일의 「종신고용」은 대전후 노사대립의 절충책

미국 이스트 캐롤라이나대의 레인 켄워티 교수(경제학)는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부문사이의 협동심이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이 협동심은 몇몇 사회만 가능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경제원리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미 경제전문지 「도전」최근호에 게재된 그의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소개한다.

지난 2백년동안 대체로 시장경쟁을 통해 국가경제의 성공이 이뤄진다고 널리 믿어져 왔다.그러나 여러 나라의 실례를 비교해보면 이 생각은 절반만 옳다는 걸 알게 된다.분명 시장은 경제행위를 상호 조절시키는 유익한 장치이며 경쟁은 경제적 진보를 일으키는 힘찬 발동기다.그러나 경쟁만으론 충분치 않다.개인과 조직들로 하여금 일관되게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하도록 동기부여하는 틀을 갖춘 경제체제는 성공한다.그런데 이런 체제는 다름아닌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다.

시장 메커니즘 아래서는 기업,근로자,투자자,노동조합,정부기관 등 개별 인자에게 좋은 것이 사회 전체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이 개별 인자들이 경쟁과 협력의 균형점을 찾을때 경제는 최고로 잘 움직인다.시장기능만으론 이 균형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면 이 협력·협동심은 어디서 구해지는가.이와 관련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신뢰의 경제학」이 자주 거론된다.그러나 그는 협동심을 「너무 어렵게」보고 있다.후쿠야마는 나라마다 경제적 성취도가 다른 것을 이해하는 데는 협동심이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한다.그리고 협동심있는 경제 행태는 무엇보다 문화,특히 신뢰의 문화에 의해 북돋워진다는 것이다.신뢰와 협동심의 연관성을 잘 짚어냈다고 볼 수 있지만 후쿠야마의 「신뢰」와 경쟁의 보완재로서의 「협동심」은 상당히 다르다.

신뢰는 대규모의 민간소유 기업체가 생겨나는걸 가능케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후쿠야먀는 말한다.여기에서 국가별 경제 성공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일본,독일,미국은 그의 「고」신뢰사회인 반면 프랑스,남부 이탈리아,홍콩,대만,그리고 한국은 「저」신뢰사회다.후자 국가들은 가족구성원간의 유대가 너무나 강해 직계가족이 아닌 남에 대한 신뢰를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으며,따라서 대규모 기업 형성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프랑스와 한국에 대해 정부가 대기업의 형성과 유지에 크게 간여한 덕분에 국가경제업적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정부간여·보충방식이 무턱대고 원용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모든 나라 정부가 한국정부처럼 경제적으로 탁월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그렇더라도 대규모 민간기업이란 조건을 갖추었으나 영국같은 나라는 경제성공의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또 중소기업의 경제적 비중이 간과되고 있다.그보다 대기업 형성과 관련해 과연 신뢰가 그토록 중대한 요건일까.성장하는 회사의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직계가족외 타인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것은 중요하다.또 이런 경향이 프랑스,한국,홍콩보다 미국,일본,독일에서 더 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소속 근로인력 대다수가 경영층을 후쿠야마식으로 신뢰해야 한다거나 경영층이 종사원을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미국의 대기업 노사관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사람들은 신뢰에 앞서 일자리가 필요하고 보수를 더 후하게 주어서 승진 기회가 넓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일한다.마찬가지로 큰 회사들은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이다.소규모 기업이나 국영기업의 경우에서 볼 수 없는 신뢰가 대기업이라 해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간,구매기업과 공급회사간,경쟁하는 기업간,근로자와 경영층간,근로자 상호간의 협동심이 경제적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만 후쿠야마 주장처럼 이 협동심이 상당히 선별적인 신뢰의 산물일까.이런 후쿠야마의 신뢰가 없는 사회에선 협동심이 생길 수 없는 것인가.

신뢰가 이미 갖추어져 있으면 경제성공에 필요한 여러 부문의 협동심이 한층 쉽게 생겨날 것은 자명하지만 신뢰가 협동심 발생의 근본원인은 아니다.협동심은 대부분 역사적 시행착오와 절충의 산물,제도적 인센티브의 결과일 따름이다.예컨대 일본의 종신고용제는 잘 살펴보면 남달리 상호신뢰가 충만해서 생겨났다기보다는 2차대전이후 겪은 일련의 아픈 노사대립에서 나온 절충책인 것이다.

미국은 지난 세대 내내 신뢰가 쇠퇴해 왔다고 후쿠야마는 말한다.그러나 미국은 후쿠야마적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협동심의 형태인 기업간 연구개발 제휴,특정 공급자와 장기 파트너 계약,종업원 경영참여 등을 옛날이 아니라 「신뢰가 줄어든」 최근에 시도하고 있다.미국 기업들은 신뢰와는 상관없이 보다 효율적으로 경쟁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협동심과 관계깊은 전략을 채택한 것 뿐이다.효과가 있으면 이 방식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도중에 신뢰가 쌓일 수도 있다.분명한 것은 신뢰는 협동심의 결과물이지 결코 원인이나 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미 이스트캐롤라이나대 교수/정리=김재영 워싱턴특파원>
1996-09-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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