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연락소 개설 “지지부진”/리처드슨 방한 계기로 본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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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8-29 00:00
입력 1996-08-29 00:00
지난 21일 토니 홀 미국 하원의원과 함께 방북했던 스펜스 리처드슨 평양주재 연락사무소 초대소장 내정자가 27일 밤 북경을 거쳐 서울에 왔다.리처드슨은 28일 아침 외무부 당국자들과 만나 미·북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북한 외교부 당국자들과 협의한 내용을 설명했다.리처드슨이 전한 바에 따르면,북한이 연락사무소 개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따라서 미·북이 가까운 시일안에 연락사무소를 상호개설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북간의 연락사무소 개설은 지난 94년 10월21일 서명된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합의서 제2항은 「미·북은 전문가급 토의를 통해 양측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 「미·북은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뤄지는데 맞춰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양측은 그해 12월6일부터 10일까지 워싱턴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전문가 회의를 열고 조기개설 방침에 잠정합의한 뒤 사무소 개설에 따르는 기술적 문제 협의에 들어갔다.이에따라 양측은 지난해 초 평양과 워싱턴 중심가에 연락사무소가 들어갈 건물까지 결정했다.미국은 평양의 독일대표부를,북한은 워싱턴의 한 개인소유 건물을 지목했다.미국은 리처드슨을 초대소장으로 내정해 서울에 어학연수를 보내오기도 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해 중반부터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북한은 지난해 9월 전문가 회담에서 미국 외교행낭의 판문점 통과 문제를 걸어 회담을 좌초시키기 시작했다.그러나 외교행낭 문제는 이미 그 이전에 잠정합의가 됐던 사항으로,북한 외교부측은 군부에서 『판문점으로 자꾸 미국인들이 들락날락하면 군사시설의 보안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미국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미·북간 연락사무소 설치방침을 수정한 것은 ▲미국인이 평양에 상주하는데 따른 정보 누출과 체제이완을 우려하고 ▲뉴욕대표부가 사실상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외화가 부족하여 워싱턴에 따로 사무실을 설치할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우리측당국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지만 리처드슨은 이번 방북기간중 북한측에 연락사무소 조기개설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미국측은 대통령선거 이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빌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성과로 내세우려는 것 같다.리처드슨은 이형철과의 회동에서 북한이 워싱턴에 점지해뒀던 개인건물이 이미 임대가 됐으니 다른 사무실을 물색하라고 요청하고,사무소 개설에 따르는 추가식량지원 등 반대급부도 설명했으나 북한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이도운 기자>
1996-08-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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