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암살 미수/이재명 의사 수사기록 “햇빛”
수정 1996-08-15 00:00
입력 1996-08-15 00:00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 송병순,이완용 등 국적을 죽이지 않으면 이 나라가 발전부강할 수 없어 거사했다』
을사5적 이완용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던 이재명 의사가 1910년 당시 경시청에서 조사한 신문조서에서 밝힌 의거 동기다.
대검 공안부(최병국 검사장)는 14일 광복 51돌을 앞두고 이완용모살사건 수사기록 등을 포함,일제 강점하에 있었던 1909년부터 43년까지의 검찰자료 2백77권을 공개했다.이들 자료는 현재의 서울지검에 해당하는 경성지방재판소 검사국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해방후 넘겨받은 것이다.
이 가운데 경성지방재판소 검사국 명의의 「총리대신 이완용모살사건 수사기록」에는 이재명 의사의 거사 동기와 모의과정 등을 담은 신문조서와 증거물,참고인조서,구류장까지 들어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1909년 12월20일 경성 명치정 프랑스 교회 앞에서 벨기에황제 추도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이완용 총리대신을 살해하기 위해 이재명이 칼로 좌견갑부와 요부 등 2곳을 찔렀으나 차부 박원문이 저지,미수에 그쳤다.이 때문에 박원문은 칼에 찔려 숨지고 이재명이 다시 대신에게 달려들다 호위순사에게 체포됐으며…」라고 적고 있다.
이 의사는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황사용과 만나 『미국이 이렇게 발달하고 부강한 것은 국가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일을 개의치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송병순이라든가 이완용과 같은 국적을 어떻게하더라도 죽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결의했다.
대검은 앞으로 형사 판결문 원본철과 이완용 모살미수사건 수사기록 등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자료 등은 마이크로 필름화해 보관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등 역사연구기관에도 참고자료로 전달할 예정이다.<박홍기 기자>
1996-08-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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