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 민간기구로 출범/「역사연구회의」 운영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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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6-24 00:00
입력 1996-06-24 00:00
◎대표 학자 선임… 자율적 회원 인선/양국 10명으로 출범… 연내 첫 회의

23일 한·일정상회담에서 구성키로 합의한 「한·일 양국의 민간지식인에 의한 역사연구에 관한 회의」는 지난해 11월 김영삼 대통령이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대체하는 기구라 할 수 있다.

역사공동연구위는 양국의 학자가 모여 역사를 공동연구한 뒤 그 결과를 양국정부가 교과서에 반영하도록 노력한다는 취지였다.그러나 이번에 합의한 회의는 직접 연구하는 모임이 아니라,민간단체의 연구를 지원하는 2차적인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정부당국자는 이에 대해 『한·일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인식차를 극복하려는 현실에서 나온 합의』라고 설명했다.지난해 정상간의 합의이후 양국의 외교실무진은 연구위의 인선작업을 벌였는데,그 과정에서 한·일간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한국에서는 수많은 학자가 외무부로 전화를 걸어 『내가 반드시 위원회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일본측에서는 외무부측의 요청을 받은 학자가 모두 『나는 적당치 않은 것 같다』며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극우주의자를 비롯해,이같은 활동을 하는 데 부담을 주는 요건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국은 각각 2∼3명정도의 대표적인 학자를 선임한 뒤,이들이 자율적으로 회원인선도 하고,역사연구를 위한 양국간 회의의 명칭과 운영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교과서에 반영을 제안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양국정부는 역사연구회의가 올해 안에 양국을 합쳐 10명의 인원으로 출범,첫 회의를 개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서귀포=이도운 기자〉
1996-06-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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