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요 열창」을 보고/이경자 작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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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5-13 00:00
입력 1996-05-13 00:00
텔레비전을 켰더니 어떤 중년여자가 아주 호소력 있게 가요를 부르고 있었다.내 마음을 순식간에 흔들어놓아 나는 외출복도 갈아입지 않고 앉아서 그걸 보았다.노래 부르는 여성이 도무지 가수 같지는 않고 그런데 실력은 대단한 것 같고….아니나 다를까,주부가요열창이었다.화면은 간간이 노래하는 주부의 남편임이 분명할,흥분한 남자의 표정을 잡았고….곧 최고점수를 딴 주부가 결정되었고 지난 주의 장원과 다시 겨루고….그런데 최고 점수로 장원이 되었다는 호명을 받은 주부는 감격에 겨워 노래부르던 모습보다 더 절실하게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얼마나 오래도록 저 가수의 꿈을 누르고 지냈을까.저 정도로 부르려면 애당초타고난 재능이 있었을터인데.어릴 때 주위에서 『노래 잘 한다』고 칭찬도 많이 들었을텐데.그 꿈을 가슴에 묻고 「주부」로 십년 이십년 삼십년을 살았을테니.
물어보지 않아도 그 벅찬 감회 속에 서린 서러움을 뭉클하게 만질 수 있었다.
내가 비록 운이 좋아 소설가로 행세하며 그 일로 밥 먹고 살아가지만 아마 나보다 더 큰 재능을 가진 여성들이 꿈을 서러움으로 묻고 「주부」로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짚어진다.
사람은,그럴 것이다.가진 재능을 그것보다 더 크게 펼치고 살기도 하고 큰 재능을 깊이 묻고 살아가기도 하고,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리에서 누구나 겸손해야 한다.당연한 이치다.
1996-05-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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