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의 남자/이경자 작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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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4-29 00:00
입력 1996-04-29 00:00
자식을 대학에 보낸 어머니들을 만났다.어떤 어머니가 요새 여자대학생들의 새로운 연애풍속을 얘기했다.대학 3학년인 자기 딸이 신입생 남학생과 데이트를 한다는 얘기였다.그리고 이런 현상이 일종의 유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어머니들도 그렇다더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아래 학년 남학생과 사귀고 있는 여학생한테 그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이든 선배 남학생은 「잘난 체」한다.여자를 보호하려 하고 남자라는 사실에 대해 무조건 으스대는 경향이 있다.그런데 아래 학년 남학생에게선 그런 껄끄러운 태도가 없어서 편하다.그리고 남학생쪽에서도 「피곤하게」 전통적인 남자구실을 할 필요가 없어서 「누나」들을 좋아한다고.

나는 속으로 놀랐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의 균형이,질서가,교감의 질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누구를 지배하는 것에서 더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이 생겨나고 남자의 지배라는 보호형식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들이 생기는 것이다.정말 새로운 풍속의시작이다.

한 사회가 변한다는 것은 어쨌든 좋은 현상이다.무릇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움직이고 달라지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의 말년으로 접어드는 나는 왜 그런 현상을 반기면서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 슬픔 때문에 속이 쓰리는지.



내가 살아온 고단한 세월 때문일 것이다.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건 서로에게 불행하고 거짓된 삶이라고 피터지게 외치고,그것이 싫다고 몸부림치면 가부장제의 가시덩궁이 온몸을 찌르고 찢던 세월 때문에.

우리가 흘린 눈물과 피로,자연스러운 균형의 질서가 생겼으련만 자꾸만 슬퍼진다.내가 살아온 세월이.
1996-04-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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