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58∼65년 외교문서」 주요내용:2
수정 1996-01-19 00:00
입력 1996-01-19 00:00
61년 「5·16」으로 정권을 장악,군사정부를 이끌던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은 그 해 8월12일 「2년뒤 민정이양」을 선언했다.그러나 막상 2년이 지나자 박정희의장은 생각이 달라졌다.박의장은 당초의 약속을 뒤집고 63년 3월16일 「군정 4년연장」을 발표했다.
국내정국은 「군정 연장음모」를 규탄하는 야당측의 반발로 혼란을 거듭했고,이 상황에서 미국의 정세판단이 정국의 결정적 변수 가운데 하나였다.
올해 외무부가 공개한 외교문서 가운데는 당시 박의장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군정연장과 관련,주고받은 친서가 포함돼 있다.
박의장은 공산주의 침투 우려와 정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군정연장이 불가피하다고 설득하려 했다.박의장은 63년 3월19일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61년 8월12일의 민정이양 약속에 따라 금년 1월부터 정치활동을 허용하자,정치인의 추잡한 파쟁으로 정계의 혼란은 극심했고,일부 극렬분자들의 반국가적 음모가 나타났습니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구태의연한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완전 민정이양의 과도적 조치로서 최대 4년간 군정기간의 연장에 대해 그 가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결심했습니다.이는 어디까지나 군사혁명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는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과도적 조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하는 바입니다』라고 밝혔다.
군사정부는 박의장의 친서를 보낸 뒤 미국측의 반응을 면밀히 관찰했다.주미대사관이 3월29일 박의장의 친서를 케네디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본국에 보내온 전문은 『실무선에서는 군정연장의 원칙 불가라는 선을 유지하고 있다.정책결정자급에서는 어디까지나 한국자체에서 해결할 문제이며,미국이 한국에 지나친 영향을 준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라고 보고했다.전문은 또 『미 국무성과 국방성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 및 태도의 차이를 적극 활용하여 기회를 확장하며,특히 참전 16개국 및 주한 외교사절을 포함하는 외교활동을 강화할 것』을 건의했다.케네디 대통령은 군사정부의 우려와는 달리,민정이양 약속을 번복한 박의장의 행동을 「난국해결을 위한 시도」로 평가하면서 별다른 반대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케네디 대통령은 63년 3월31일 박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본인은 버거 대사로부터 최근 한국의 사태진전을 긴밀하게 보고받아 왔습니다.한국에서 현 정치적 문제의 해결은 민정이양 절차에 관한 귀 정부와 정치지도자 간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우리는 믿는 바입니다.귀 정부는 이를 위해 주요 지도자들과 토의를 시작했다고 본인은 보고받았으며 계속되기를 본인은 희망하는 바입니다』라고 밝혔다.
2년전 5·16이 일어난 뒤 군사정부가 민정이양을 약속한 8·12성명을 발표했던 것은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그런 점에 비춰본다면,케네디 대통령의 서한은 미국이 박정희군사정부를 적극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방관자적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박의장은 63년 4월초 케네디 대통령에게 다시 친서를 보내 『한국의 조야가 함께 민정이양 절차를 안출할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요지의 3월31일자 서한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명한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이도운기자>
1996-01-1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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