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사 1년… 「제2아프간」 우려(특파원 코너)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5-12-12 00:00
입력 1995-12-12 00:00
「체첸사태」가 11일로 1주년을 맞았다.분리독립을 주장하다 러시아군의 전격 무력개입으로 체첸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반군지도자로 전락한 조하르 두다예프는 지난 1년동안 체첸남부를 거점으로 무력저항해 왔다.결과는 양쪽에서 3천15명(공식집계)의 군인·민간인이 희생됐을 뿐 연방정부의 승리도,체첸의 독립도 아닌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언론들은 2만5천명,인권운동가들은 4만명까지 이 전쟁의 희생자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8일 러시아와 체첸 임시정부 사이에 「체첸지위협정」이 맺어졌다.연방정부가 독자적 외교사무소 개설을 허용하는 등 체첸의 전반적 자결권을 인정하는 대신 독립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연방내 공화국들과 「독립은 인정하지 않되 폭넓은 자치를 허용」해주고 있는 마당이다.더욱이 체첸쪽 서명 당사자는 연방정부가 세워놓은 「하수인」 총리인데다 공개적 논의과정없이 서둘러 체결함으로써 문제를 꼬이게 하고 있다.이번 협정은 17일의 총선을 의식한 연방정부의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체첸내 친연방주의자 사이에서도 『공개논의없는 조인은 합법성이 결여된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현지언론들도 연방정부의 이같은 방안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오히려 반군지도자 두다예프를 궁지로 몰면서 「초강수」를 염두에 둔 명분축적용으로 보고 있다.하지만 연방정부가 그를 생포하거나 완전히 제거하는 일도 이제는 어렵게 돼가고 있다.

그를 사살하면 그를 체첸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온 반군세력 나아가 체첸국민들의 감정을 격화시켜 거센 저항이 일 것이란 지적이다.반대로 그를 생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크렘린 주변의 많은 군인사들은 오히려 두다예프가 생포되길 원치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자신들이 그동안 체첸공화국과 내통,무기 등을 밀거래한 사실이 폭로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실제로 지난 9월 체첸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군인사는 『우리는 두다예프가 어디 있는지 잘안다』『그는 러연방군의 검문소에서 불과 1마일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으나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연방정부의 이러한 딜레머 때문에 체첸사태는 「제2의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변모해갈 가능성마저 없지 않은게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모스크바=유민>
1995-12-12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