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낭비 불요” 개헌론 백지화/여의 개헌추진 철회 저변
기자
수정 1995-12-01 00:00
입력 1995-12-01 00:00
여권이 한때 「5·18특별법」제정에 앞서 위헌소지를 없애기 위한 개헌문제를 검토하다가 헌법개정없이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개헌이 특별법 위헌시비 불식을 위한 부칙개정 방향으로 검토됐지만 그 「진의」를 놓고 야당측은 물론 여권내부에서도 「긴장된」 반응을 나타냈다.정치권 판갈이가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여권내 5·6공 출신 인사들의 불안감이었다.야당들은 정국 주도권장악을 위한 또 하나의 「강수」로 파악,개헌에 지레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29일 저녁 당정 핵심부 모임에서 검토됐던 개헌방안은 특별법 제정에 위헌소지가 없다는 민자당 특별법 기초위원들의 전문가적 견해에 따라 일단 「금고」속에 보관됐다.특별법 제정과정이나 「12·12」 및 「5·17」 주도자 사법처리 과정에서 위헌시비가 거세게 일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개헌논의는 일단 수면하로 잠복했다고 여겨진다.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에 내린 원칙은 두가지라고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설명했다.첫째는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헌정사의 질서를 파괴하고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제도를 만들라는 것이다.둘째는 법에 어긋나는 절차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별법의 형태나 그에 앞서 개헌이 필요한 지는 절차적 문제일 뿐이라고 이 고위관계자는 말했다.그런 절차는 민자당에 위임이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결국 민자당측 판단으로 현 단계로선 개헌이 필요치 않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청와대는 외형적으로 개헌문제나 구체적 특별법안 내용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자칫 사안의 본질이 흐려질까 우려해서다.정치적 의도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야당의 의구심을 해소하고 개헌이 무산됐을 때의 부담도 고려한 때문으로 이해된다.
여권 핵심이 한때 개헌까지 검토했던 배경에는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특별법 제정 의지를 과시하고 아울러 국민들의 일체감을 조성,그 결과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는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던 것같다.
그러나 개헌의 절차가 복잡하고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초래할 우려도 있어 개헌없는 특별법제정으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특히 독일식 특별법으로도 충분히 위헌시비를 비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김영수 청와대민정수석은 이러한 의견을 김대통령에게 보고,긍정적 응답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야권은 쿠데타 관련자를 단죄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헌법개정 국민투표에 국민들이 압도적 지지표를 던질 경우 여권에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뺏긴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어정쩡한 자세로 개헌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야권이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는 사실 자체가 여권으로서는 소기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다.김대통령과 여권의 5·18특별법 제정 의지가 개헌을 불사할 만큼 굳다는 것을 국민에게 확실히 알린 효과도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이제 개헌문제가 정리됨에 따라 여권은 특별법 추진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목희 기자>
1995-12-01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