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러시모어산 4인의 대통령상(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26)
기자
수정 1995-11-18 00:00
입력 1995-11-18 00:00
세계의 명소 최근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역임했던 사람의 얼굴이 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표지로 크게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눈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는 모습이 표지 전체에 크게 확대되어 나타났었다.이 사람의 얼굴은 요즘 연일 국내외 매스컴에 등장하고 있다.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보게 되는 이 얼굴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해방 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모두 여섯명의 전직 대통령이 우리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신문이나 방송매체에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씩 등장하는 이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망명하기 직전의 얼굴,암살당하기 직전의 얼굴,대통령직에서 떠밀려나기 직전의 얼굴,국민에게 사죄하는 얼굴.
○로키산맥 발원지 위치
미국 중서부 지방에 사우스 다코타라고 불리는 주가 있다.크기는 우리나라의 두배 정도인데 인구는 약 70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6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서쪽으로 로키산맥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주요 생산품이라고는 사료용 옥수수뿐인,미국에서도 가장 한적하고 외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놀랍게도 매년 2백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린다.사우스 다코타주 남서쪽 러시모어라는 산 어느 절벽에 미국 대통령의 자랑스런 얼굴들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1927년에서 1941년에 이르는 14년동안 굿존 보글럼이라는 조각가는 거대한 화강암 절벽을 깎아내어 역대 미국 대통령 네 사람의 얼굴을 조각해 놓았다.미국의 국부로 칭송되는 조지 워싱턴,미국 독립헌장의 저자이며 초기 미국의 모든 제도를 완성시킨 토머스 제퍼슨,노예해방을 이룩한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그리고 20세기초 미국의 경제·외교 정책을 훌륭히 수행했고 그로 인해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바로 이 자랑스러운 얼굴의 주인공들이다.
이 러시모어 대통령 얼굴상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각으로 제작 당시 깎아내어야 했던 돌의 무게가 45만t이나 된다.각 대통령의 얼굴은 그 길이가 각각 18m이고,6m의 코,옆으로 5m가 넘는 입,또 3m가 넘는 눈을 가지고 있다.이 얼굴에 비례한 크기의 전신상을 상상해 보면 그 높이가 1백38m에 이르게 된다.이 거대한 대통령 얼굴들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찬란한 동녘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얼굴크기 18m 걸작품
보글럼은 당시 미국 최고의 조각가로서 특히 거대규모의 인물상 제작으로 유명했다.그는 정교하게 아름다운 형태보다는 단순하지만 거대한 덩어리가 더 큰 감동을 자아낼 것으로 믿는 조각가였던 것이다.
사우스다코타주에 미국의 훌륭한 역대 대통령의 인물상을 부탁받은 보글럼은 러시모어산에서 깎아지른듯한 화강암 절벽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이 절벽은 높이가 약 1백20m,폭은 약 1백50m가 되었다.여기에 보글럼은 우선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하기 시작했다.초대 대통령으로서 워싱턴의 얼굴이 가장 현저한 인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워싱턴의 얼굴이 완성되기 시작할 때까지도 다른 세명의 대통령의 위치와 모습은 결정되지 않았었다.제퍼슨과 링컨,루스벨트 대통령의 순서로 그때그때 절벽의 모양과 화강석 바위의 형상에 맞추어 이들의 얼굴상이 제작되었다.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게 되었다.제퍼슨 대통령의 머리는 처음에는 워싱턴 대통령 머리의 왼쪽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그곳의 바위가 너무 물러서 도리없이 워싱턴 머리의 오른쪽에 다시 만들어야했다는 숨겨진 이야기도 있다.
단단한 화강석 바위를 깎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광부와 채석공을 동원해 다이너마이트와 착암기를 써서 우선 바위 덩어리를 달걀같이 둥그스럼하게 깎아내야 했다.이어서 이 덩어리를 얼굴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끌과 정을 쓸 수밖에 없었다.연이은 작업으로 끌과 정은 금방 날이 무디어졌고 그래서 대장장이가 24시간 작업현장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게다가 매일 아침 7백60여개의 계단을 힘들여 걸어 올라가 바위 꼭대기에 닿고,다시 거기서 줄을 타고 내려와 매달린 상태에서 석공작업을 해야했던 사람들의 노고도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조건의 어려움보다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덩어리를 진흙덩이 마냥 이리저리 깎아내어 높이 18m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일이 더 큰 어려움이었다.거대조각의 제작경험이 많은 보글럼은 아주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도구를 개발해 내었다.그는 우선 실제 들어설 인물상 크기를 12분의1로 축소시킨 모델을 만들었다.이것은 실제 인물상의 1피트가 모델에서는 1인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다음 모델의 머리 한 복판에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타워크레인 같이 생긴 포인터를 각도를 정확히 잴 수 있는 분도기와 함께 설치했다.포인터 끝에는 그 축을 따라 실을 끌어다가 추를 매달았다.
○대장장이 24시간 대기
추가 포인터에 매달리는 위치와 거기서부터 늘어뜨려지는 실의 길이를 조정하여 추를 얼굴 모델의 어느 한 지점에 닿게 하면 그 지점의 정확한 위치가 포인트의 회전각,추의 수평 위치,또 추의 높이로 정확히 측정될 수 있었다.
모델뿐만 아니라 실제 바위 덩어리 위에도 똑같은 모양의 포인트가 설치되었다.물론 이 포인트는 모델 포인트의 열두배 크기를 가진 것이었다.그래서 현장 한 구석에 지은 막사에 갖다 놓은 모델에서 한 지점을 측정하고 그것을 열두배로 키우면 여기에 대응되는 바위 덩어리 위의 지점을 정확히 표시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이 단순한 측정방식은 14년동안 한치의 오차도 없이 훌륭하게 쓰여졌다.
1927년에 시작된 작업은 제작비의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진행과 중단,재개를 거듭하게 된다.1941년 보글럼은 작품의 완성 직전 그만 죽고 만다.대신 굿존 보글럼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아버지의 과업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되는데 링컨 보글럼은 이미 15살 때부터 포인트 측정기사로서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14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보내며,그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을 1천6백만달러를 투자하며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물려가며,또한 그 어려운 제작여건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미국의 역대 대통령 4인의 얼굴상을 만들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는 진정으로 존경하고 간직할 수 있는 대통령의 얼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둡고 참담한 전직 대통령의 얼굴들만이 남겨진 우리에게는 이들 미국민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퇴임한지 2백년이 지나서도 매년 2백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어림잡아 2억달러,우리돈으로 1천6백억원의 관광수입을 해마다 올려주는 미국 전직 대통령의 빛나는 얼굴이 재임시절 5천억원의 돈을 국민으로부터 갈취한 우리 전직 대통령의 얼굴과 겹쳐져 우리를 슬프게 한다.<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
1995-11-18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