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씨 시집 「참 맑은 물살」 펴내
수정 1995-10-12 00:00
입력 1995-10-12 00:00
곽재구 시인(41)의 새 시집 「참 맑은 물살」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된다.지난 81년 신춘문예를 통해 「사평역에서」로 등단한 시인이 최근 3∼4년간의 작품들을 모아 펴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15년간의 시작생활을 통해 그는 우리 문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한사람으로 꼽혀왔다.누더기같은 삶의 쓸쓸함에서 결곡한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는 그의 한결같은 시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않는 시인의 내면풍경을 엿보게 한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서정성이 남도소리,설화 등 삶에 아직도 얼비치고 있는 우리것에 대한 천착과 맞물리는 모습을 보여준다.태어나면서 한번 들은 강강수월래로 그만 소리의 길에 접어들어버린 진도 할머니나 갈대꽃을 흔드는 진양조의 처연한 만가가락 등에 얽힌 한맺힌 사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성수대교와 백화점 붕괴의 현실이 판소리 사설 형식에 담겨 꼬집힌다.
<진도 지산면 인지리 사는 조공례 할머니는/소리에 미쳐 젊은날 남편수발 서운케 했더니만/어느날은 영영 소리를 못하게 하겠노라/큰 돌멩이 두 개로 윗입술을 남편 손수 짓찧어 놓았는디/…/정이월 어느날 눈 속에 핀 조선매화 한 그루/할머니 곁으로 살살 걸어와 입술의 굳은 딱지를 떼어주며/조선매화 향기처럼 아름다운 조선소리 한번 해보시오 했다더라>(「조공례 할머니의 찢긴 윗입술」중)
<첫 뉴스가 나가자마자/…/눈알이 게사니 알만해진/지미 떠그랄 친구/오 코리아 백화점 팍큐!>(「팍큐소전」중)
구겨진 민족의 삶을 찾아 캘리포니아와 용정까지 넘나드는가 하면 시인은 동학의 현장인 전남 고부 메밀꽃밭에선 동족상잔에 순결을 앗기고<하늘빛을 이고 천년도 넘게 기다려온 돌미륵>에 스민<눈물 그렁그렁한 백제 가스나의 속살>을 떠올리기도 했다(「은선리 오층석탑 이야기」) 곡성땅으로 접어들어 인민군으로,국군으로<제명을 이어가다>약수물 받으러 온 외지 차량에 사라져버린 한 친구를 통해 우리 현대사의 그늘을 비춰본다(「물봉선 전」).
보잘것 없는 사람들의 흔한 사연을 바라보면서도 시인의 눈은 그러나 시종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구차한 삶의 세목에서 향기와 그리움을 읽어내는 이같은 시에는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하는 시인의 소망이 깔려있다.<손정숙 기자>
1995-10-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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