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자료 8백여건 쓰레기 취급”/배심원이 밝힌 심슨 평결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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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10-06 00:00
입력 1995-10-06 00:00
『산더미같은 증거들은 모두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미식축구스타 OJ 심슨의 이중살인혐의에 대한 「세기의 재판」에서 의외로 만장일치의 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은 5만페이지가 넘는 재판기록과 8백57건에 이르는 증거자료들을 거의 무시했었다고 한 배심원이 밝혔다.
그동안 배심원 번호 6번으로 알려졌던 라이오넬 크라이어(44·흑인남자)라는 한 전화회사 직원은 4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지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예상외로 빠르게 무죄평결을 내리게 된 경위와 그 과정을 자세히 밝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배심원단은 무죄평결작업을 시작한 지난 2일 상오 9시부터 법정서기가 수레로 끌고온 방대한 자료들을 제쳐두었다.그들은 피살자들의 피와 심슨의 피가 묻었다는 장갑과 양말등을 분석한 검찰의 DNA분석과정이 미심쩍다는 점과 인종차별주의자로 밝혀진 전직수사관 마크 퍼먼의 증거조작혐의,그리고 검찰이 사건발생시간으로 추정한 30여분사이에 과연 심슨이 두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등 세가지 관점에 초점을 맞춰 평결작업을 펼쳤다.
크라이어는 『우리는 많은 증언들 가운데서 특히 법의학자 헨리 리 박사가 지적한 뭔가 잘못 돼있다는 대목을 공통적으로 염두에 두었다』고 말했다.리박사는 변호인측이 동원한 병리학 전문가.리박사는 피살자들의 핏자국이 묻은 장갑과 양말등에서 추출된 혈액을 조사한 DNA분석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던 인물이다.배심원들은 『뭔가 이상하다면 그건 버리자』는 식으로 DNA분석결과나 머리카락 유전자분석자료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꺼냈다했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흑인 9명,백인 2명,히스페닉 1명등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1차 평결은 빨대를 빈병에 집어넣는 비밀투표형식으로 작업을 시작한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 이뤄졌다.결과는 무죄 10명,유죄 2명.『그 2명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고 크라이어는 말했다.
배심원들은 「검찰측의 일관성 없는 증거제시」라는 단 한가지 주제로 다시 논점을 압축했다.심슨의 알리바이를 추적한검찰은 사건발생시각을 밤 10시20분께로 했다가 나중에 10시30분이후일 가능성을 제시하는등 확실한 시간대를 잡는데 실패했던 것.
배심원들은 마침내 심슨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건 당일 밤 11시 심슨을 태우고 공항까지 간 리무진기사의 증언록을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결국 리무진기사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며 사건 보도 이후의 여러가지 정황에 영양을 받았다는데 배심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1차투표를 한지 2시간여가 지난 하오 2시30분.배심원단은 무죄평결을 만장일치로 끌어냈다.<로스앤젤레스=황덕준 특파원>
1995-10-0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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