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저총 고구려 부인상(한국인의 얼굴:46)
기자
수정 1995-09-29 00:00
입력 1995-09-29 00:00
고구려 고분의 벽화는 고대인들의 생활상은 물론 신비로운 정신세계 까지 반영했다.중국 길림성 통구지방의 각저총은 그러한 유형의 5세기말 벽화 무덤이다.각저총은 얼핏 한 쌍을 이룬 무덤(쌍분)으로 착각할 만큼 무용총 바로 이웃에 있다.
이 무덤 이름을 지어준 각저라는 말은 씨름을 의미한다.그러니까 씨름하는 그림이 있어서 무덤 이름이 각저총이 되었다.씨름 그림은 널방(현실) 동쪽 벽에 그려 넣었다.또 동쪽 벽 다른 한켠에는 부엌 그림도 있다.이들 벽화는 북쪽 벽에 그린 무덤 주인공과 가족들의 생활도와 더불어 풍습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그리고 해와 달과 별 자리가 있는 일월성신도에는 영적 감각의 내세관념이 어렸다.
이들 벽화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뚜렷한 인물은 여인상이다.무덤이 각저총 이라고는 하지만 두드러진 인물은 무덤 주인공과 가족들을 묘사한 북쪽 벽 생활도에 나온다.다만 주인공 얼굴은 오랜 세월을 두고 스며든 물기가 지워버렸다.그러나 두부인 가운데 주인공 가까이 앉아있는 부인 얼굴은 아직 분명하다.얼굴 뿐 아니라 단정한 몸가짐도 읽을 수 있다.그래서 별로 빛 바래지 않은 어여쁜 고구려여인을 지면에 끌어내게 되었다.
여인은 고개를 약간 떨구었다.다소곳 하기 이를데 없다.그리고 합장한 자세로 무릎을 꿇어 더욱 얌전하고 조용한 기풍이 우러난다.
이 정숙한 여인은 남편을 바로 치켜보지 않고 눈매를 살포시 깔았다.자그마하나 예쁜 코와 앵두 같이 작고 붉은 입술이 도톰한 볼과 어울렸다.귀는 비록 두건아래로 흘러내린 검고 실한 머리칼에 가려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무랄 데가 없는 얼굴이다.여인이 머리에 쓴 두건은 고구려 고유의 귁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옷 매무새 역시 고구려 스타일이다.여인은 무늬가 들어간 검정색 긴 저고리를 입었다.깃과 소매 끝을 조금씩 남기고 붉은색 회장을 단 두루마기 만큼 긴 웃옷이다.섶은 왼쪽으로 여민 이른바 좌임인데,이는 고대 동북아시아 의상에 흔히 나타나는 전통이기도 하다.여인이 무릎을 꿇고 모루 앉아서 치마 끝 자락이 드러났다.요즘말하는 긴 벨 스커트형의 주름치마와 너무 흡사하다는 사실이 이채롭다.각저총 부부상 여인들의 옷 차림은 무용총과 개마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무덤 부부상에 두명의 여인이 등장한 것으로 미루어 주인공은 두 부인을 두었던 모양이다.고구려의 다처제 기록은 뚜렷하지 않으나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취수혼은 존재했다.어떻든 각저총에 그린 두 부인중에 주인공 곁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인이 본실일 것이다.부부를 묘사한 벽화는 황해도 안악3호분(서울신문 9월1일자 12면)과 평남 용강 쌍영총에도 나온다.그러나 각저총 그림이 훨씬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황규호 기자>
1995-09-29 1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