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침략 행위예술로 고발/싱가포르 작가 탕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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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9-12 00:00
입력 1995-09-12 00:00
◎“용서하되 잊어서는 안된다”/굶주렸던 그 시절의 비참함 예술로 승화/종전 50년 맞아 중학교 돌며 의식화 운동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점령치하에서 출생한 싱가포르의 행위예술가가 종전50주년을 기념해 중학교를 순회하며 행위예술을 통한 정신운동을 벌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행위예술가 탕 다 우(52)는 2차대전후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 타피오카가 떠오른다.타피오카는 카사바란 식물의 뿌리로 만든 녹말.그 비참했던 시기에 성장하면서 쌀은 구경하기 힘들었다.그의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타피오카 뿐이었다.그 당시의 배고팠던 기억은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고 그는 이제 그 기억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탕이 종전 5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일은 「타피오카 우정계획」.중학교를 돌면서 카사바 뿌리인 타피오카를 전쟁 당시의 상징이자 창조적 도구로 사용한다.뿌리에 디자인을 새겨넣고 잉크를 묻혀서 탁본을 떠낸다.학생들도 마음대로 디자인하게 한다.그리고는 모두가 타피오카의 일부를 먹는다.모두가 한 뿌리에서나왔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이다.그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침략을 용서해야 한다.지나간 일이다.그러나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탕의 전시물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것들이다.지난해에는 철사그물로 고래모양을 만들고 그 주변에 빈 필름통 2만개를 뿌려놨다.이 전시물의 제목은 「미안하다.고래야.네가 내 카메라에 들어 있는지 몰랐다」.필름제조에 고래 젤라틴을 쓰는 것에 항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관람객들에게 기도하면서 필름통을 고래몸에 테이프로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탕은 항상 이단자였다.중학교 졸업후 미술을 독학했다.그림·초상화·서예 비슷한 습작들을 닥치는대로 했다.정식미술수업을 받기 위해 70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에서 미술석사학위를 받았다.그러나 유별난 것들에 매료되는 습성은 버리지 않았다.『나는 조각에 관심을 쏟았다.길거리와 백화점에서 수집한 쓰레기를 이용해서 한참 쳐다보고 합쳐놨다가 다시 흐트려뜨려놨다가 하곤 했다』고 그는 말한다.

탕은 88년 싱가포르로 돌아와 난양미술아카데미와 라살시아미술대학 등에서 가르쳤다.그 해에 집 네채와 닭장 네채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예술인촌을 조성했다.이 스튜디오는 한창때 예술인 50여명의 가정이었다.결국 철거됐지만 이들의 모임인 「예술인촌」은 아직도 단체로 남아 있다.쿼 키안 초우 싱가포르미술관장은 『이들은 미술이 완성된 소비용 상품이 아니라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일깨워줬다』면서 「예술인촌」이 싱가포르 미술계에 불후의 충격을 안겨줬다고 극찬한다.



지난 93년말 「예술인촌」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 단체 멤버 2명은 자신들의 행위예술에 대한 언론의 불공정한 보도에 항의,무대에서 음모를 가위로 자르고 토하는 「작품」을 선보이다 당국으로부터 대중앞에서 영구 공연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탕은 요즘 영주권을 갖고 있는 영국과 싱가포르를 왔다갔다 한다.그가 기획하는 다음 쇼는 「예술에 돈을 주지 말라」이다.싱가포르에서 먹고살기 힘든 예술가의 처지를 거꾸로 빗대서 붙인 제목이다.그는 요즘 목수·웨이터 등으로 생활비를 꾸려나간다.<김주혁 기자>
1995-09-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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