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쉰돌… 이젠 오십보백보 안되게(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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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8-14 00:00
입력 1995-08-14 00:00
셈(수)의 이름은 세는 현상과 많이 관련된다고 보아야겠다.하나·둘·셋…하고 세다가 두자리수인 열에 이르면 손바닥이 펴지면서 열린다.그것은 열다(개)는 뜻과 같아서 흥미롭다.

그다음 두자리수는 스물·서른·마흔·쉰·예순·일흔·여든·아흔이다.주목되는 사실은 「스물」만 빼고는 모두 「흔」을 항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소리가 변화를 거쳤고 맞춤법따라 표기함으로 해서 달라보인다는 것뿐이다.서른은 셋, 예순은 여섯, 여든은 여덟과 관계되지 않은가.「쉰」도 「쉬흔」이 줄어진 형태.「다섯」과는 떨어진 소리지만 『마흔아홉,쉬흔…』하면서 온(백)의 가운데 까지 왔으니 일단 숨돌려 쉰다(휴)는 뜻을 담았다고 해석해 봄직하다.

하지만 여기서 「쉰다」는 것을 멈춘다는 뜻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쉰하나,쉰둘…』을 세어나가기 위해 숨을 한번 새롭게 「쉬어」본다는 뜻이 더 짙었던 것 아닐지.가령 공자가 『쉰살에 이르러 천명을 알았다』(오십이지천명:「논어」위정편)고 했던 뜻도 그것이다.세상이치에 대해 그때 비로소 어섯눈을 뜨게되었으므로 참다운 내것으로 만드는데는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고백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논어」의 술이편에 보이는 말도 그렇다.『(내나이 몇해를 더하여) 쉰에 역경을 배우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면서 한뉘로도 모자랄 깨달음의 어려움을 밝히고 있지않은가.잠깐 숨을 내쉬면서 원숙을 기약하는 나이가 쉰이라고 말해볼수 있을 법하다.

「회남자」(원도훈)에 쓰인 바 위나라 대부 거백옥의 성찰하는 자세도 쉰을 표준삼고 있다.거백옥은 공자도 군자라면서 존숭했던 사람.그는 『쉰살에 이르러 마흔아홉살까지의 잘못을 알았다』(오십이지사십구년비).나이 쉰이란 그렇게 반백년의 삶을 거울삼아 굳세고도 옹골찬 삶에의 숨을 쉬는 연륜이라고 해야겠다.

올해의 8.15광복절은 그 쉰돌맞이라는 점에서 한결 뜻이 깊어진다.그게 어디 짧은 세월인가.일제강점의 굴레아래 살았던 35년보다도 15년이나 더 긴 햇수가 아닌가.변하고 발전하고 한것이 엄청나다.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49년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두동진 경우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영욕 엇섞인 49년.수렁속을 헤맨 발자취에 대한 성찰을 뼈아프게 해야한다.쉰살부터서의 걸음걸이가 더넘에 겨워 오십보백보로 될수는 없다.빛나는 내일을 여는 대열에 발맞춰나가는 기점으로 삼을수 있어야겠다.
1995-08-1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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