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한계 극복 230시간의 사투/최명석군 사지탈출 기적의 드라마
수정 1995-07-10 00:00
입력 1995-07-10 00:00
『여기,사람있어요』 생사를 넘나드는 「지옥의 여정」에서 끝내 살아 우리들 곁으로 돌아온 최명석(21)군의 첫마디였다.어쩌면 그는 우리가 기다리던 이 시대의 마지막 초인인지 모른다.인내와 한계를 극복한 2백30시간의 인간승리의 개가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삼풍백화점 A동 지하1층 매장에 매몰돼 있다 9일 상오 기적적으로 구출된 최군.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지난달 29일 상오 5시50분이었다.
삼풍백화점 A동 지하 1층 수입신발코너 매장.여자친구 유정화 양과 아르바이트자리를 구하러 중학교동창인 이강선(21)군,그리고 여직원 두명과 라면을 먹기 위해 지하3층 식당으로 내려갔다.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 매장 누나들이 생각나 아이스크림 두개를 들고 지하 1층에 있는 독일제 아동신발코너인 「엘레판덴」으로 올라갔다.왠지 혼자 먹으려니 미안했다.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몸이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쿵』 『꽝』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쩍쩍 갈라지는 것 아닌가.
어디론가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아찔한 현기증이 났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얼마나 지났을까,답답함과 참을 수 없는 주위의 열기 때문에 깨어났다.옆을 보니 사방이 부서진 콘크리트더미로 가로막혀 있었다.온통 암흑이었다.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인 1m20㎝ 크기의 공간에 내가 갇혀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근처에서 간헐적으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거기누구 없어요』 비스듬히 누워있는 콘크리트벽을 사이에 두고 여자 두명이 있었다.나도 소리쳤다.평소 안면이 있는 백화점직원 이승연(24)씨와 50대의 아주머니였다.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겨우 『구조대가 곧 올테니 그때까지 참자』고 말해주었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다음날인 30일쯤 일것 같다.이씨와 아주머니는 자꾸 물이 차올라 걱정스럽다고 했다.한참이 지났는데 『꿀꺽』 『꿀꺽』소리와 함께 이씨가 『나먼저간다.소식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그리곤 아무 말이 없었다.
공포가 엄습해왔다.『이렇게 죽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그때였다.애인인 정화가 선물로 준 어린이 장난감인 증기기관차가 옆에 있었다.사랑하는 정화,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살아야 한다』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위에서 다행히 빗물과 소방대원이 뿌린 물이 흘러 내렸다.웃옷을 벗어 빗물을 받아 짜서 먹었다.배가 고파 사과 포장용 종이상자를 씹어 먹었다.시원한 콜라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잠을 청했다.깨어 있으면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며칠이 지났는지 여전히 가늠할 수 가 없었다.다만 하루,이틀이 지났을 뿐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구조대는 왜 안오나.에라 모르겠다.안 구해주려면 말아라』 서서히 오기가 생겼다.
그러다가도 간간이 반대편 B동쪽에 사람소리와 함께 빛이 보이면 나는 마구 외쳤다.『여기 사람있어요』 그러나 나의 외침이 이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먼것처럼 보였다.
매일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배가 고파왔다.종이상자를 물에 불려 5㎝ 정도 다시 먹었다.목이 메여 더이상 씹어먹을 수는 없었다.『정화는 살아있을까』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문득 정화생각이 났다.
8일 하오 5시쯤이었다.환청이었는지도 몰라도 어딘선가 『작업을 중단한다』는 스피커소리마저 들렸다.실낱같은 희망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잠을 잤다.『그래,안 구해주려면 말아라』 이렇게 잠든채로 그냥 죽었으면….
한참을 자는데,잠결에 콘크리트 더미위로 돌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이 보였다.『여기 사람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를 또다시 질렀다.
외침을 들었는지 곧 반응이 왔다.『누가 있소』 『잠시만 기다려요』하며 머리 위로 불빛이 비춰졌다.매몰된지 세번째 보는 불빛이었다.
이때가 9일 상오 6시30분.구조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상오 8시 20분.구조대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정말 빛다운 빛을 보게 됐다.
눈을 가린 수건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눈물이 울컥했다.사람들의 박수소리도 들렸다.
『아버지….말을 하고 싶어요』<주병철 기자>
1995-07-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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