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의 토박이말 메아리에 부쳐(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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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7-05 00:00
입력 1995-07-05 00:00
귀꿈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이글에 나오는 토박이말은 모두 국어사전의 올림말(표제어)에 올라있다.더러 그렇지 않은듯이 보이는 경우도 있긴 했다.가령 몇회전의 「애담살이」같은 말.「담살이」는 「머슴」을 이르는 방언으로 국어사전에도 나와있는데 남도쪽에서는 「애봐주는 계집아이」를 그렇게 불렀기에 썼던 말이다.그다음주의「억지떠세」는 「억지」와 「떠세」를 따로 찾았어야 한다.
토박이말을 「어려운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는지.어려운 한자말이라든가 외래어라면 몰라도 토박이말 쓰는 일을 그렇게 타박할 수는없다고 생각한다.그건 배달겨레의 맑은 피를 이어 내려오는 말이 아닌가.그걸 배달겨레 스스로가 잊으면서 죽여가는 현실을 뒤돌아보면서 갈고 다듬는 마음을 도스르는 자세가 더 옳은 것 아닐까 한다.
까놓고 말한다면 이 난은 토박이말을 일부러 바득바득 써보고 있다.사전의 갈피에서 숨넘어가고 있는 배달겨레말에 인공호흡이라도 시켜보자는 뜻이다.우리선대들이 썼던 오달진 우리의 말.핏기 잃어가는 그말들에 발그속속한 생기를 불어넣는데 구실해보자는 뜻으로 써오고 있다.값진 유산을 그렇게라도 지켜나가야 하는것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김만중의 「서포만필」에서 읽은 글귀가 떠오른다.그는 늙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구운몽」을 한글로 썼던만큼 국어·국자에 대한 생각이 깊다.정송강의「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을 아름다운 글이라면서 높이 평가했던 김서포.그는 이렇게 말한다.『…우리나라 시문은 자기말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다만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것과 같다.…나무꾼이나 물긷는 아낙네가 에야디야하며 주고 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해도 진가를 따진다면 이른바 시부라는 것과 더불어 논할 수는 없다…』
배달겨레 피를 이어받은 사람다운 생각이며 말이 아닌가.토박이말이 더 많이 더 널리 쓰여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1995-07-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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