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인도시한 합의 가장어려웠다”/쌀제공 실무주역 박용식 무공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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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6-26 00:00
입력 1995-06-26 00:00
◎「씨 아펙스호」 태극기 달고 입항할것/북송 출항 지연은 나진준비 늦은탓

북경에서 북한의 조선삼천리총회사 김봉익 총회장과 10여차례 만나 대북 쌀지원 후속 실무회담을 마치고 25일 귀국한 박용식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은 김포공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북지원 쌀 15만t의 품질·인도시한에 대해 이견이 노출돼 회담이 조금 지체됐다』고 밝혔다.다음은 박사장과의 일문일답 요지.

­쌀 2천t을 싣고 첫 출항하려던 씨 아펙스호의 출항이 늦어진 이유는.

▲단순히 나진항에의 하역등 준비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북경 쌀 후속 실무회담이 지연된 것은.

▲쌀의 품질·인도시한등 세부사항을 절충하느라 늦었다.

­쌀의 품질에 어떤 이견이 있었나.

▲우리측은 쌀의 습도를 15%로 하자고 한 반면 북한은 14%로 하자고 팽팽히 맞섰다.습도 1%차는 대단히 크다.14%로 맞추려면 다시 말려야 하므로 작업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인도시한에 대한 의견 차이는.

▲우리는 쌀의 포장·가공등이 8월10일 이전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북측이 이보다보름이상 빨리 보내주기를 원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절충했나.

▲우리가 북측의 주장대로 수용하지 못할 경우 남북신뢰관계가 깨진다고 여러번 말해 결국 우리측이 요구한대로 이해가 돼서 성사됐다.

­쌀을 북한에 어떻게 인도하며 연락은 어떻게 취하기로 했나.

▲우리 국적선이 나진항에 접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바지선을 이용해 인도받는다.연락은 북경을 통해 하기로 했다.우선 쌀을 보내기 5일전에 선박의 제원·승선명단과 쌀의 품질·수량등을 팩스를 통해 북경의 북한대사관을 거쳐 삼천리총회사에 연락하기로 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북한에 들어가는가.

▲씨 아펙스호처럼 우리 국적선은 태극기를 달고 간다.

­몇년도 쌀을 보내기로 했나.

▲15만t 모두 93년쌀을 보내기로 했다.<김규환 기자>
1995-06-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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