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쌀을 보내는 뜻/장정행 편집국장(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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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6-24 00:00
입력 1995-06-24 00:00
「6·25」가 나던 해 태어난 사람도 이제 마흔 다섯살이 되었고 갓난 아이를 포함하여서도 「6·25」를 경험한 사람이 전 인구의 20%에 미치지 못하니 「6·25」에 무심할 때가 되었을 법도 하다.
「6·25」가 일어났던 때는 물론 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북한은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북한에는 비교적 풍부한 자원에다 공업이 발달해 있었던데 비해 남한에는 인구는 많은데다 이렇다할 공업 기반이 없이 농업에만 의존해오다 갑자기 분단이 된 결과였다.일상 생활에 필요한 경공업 제품은 물론 북한이 송전을 중단하자 기본적인 에너지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들어 남한은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과 수출정책으로급성장을 하여 74년 1인당 GNP에서 북한을 추월한뒤 지난해에는 북한(9백23달러)의 9.2배인 8천4백83달러에 이르렀다.전체 GNP규모도 남한이 북한의 17.8배로 격차가 벌어지게 됐다.
반면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자급자족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북한은 과도한 국방비의 지출과 일인독재의 폐쇄체제로 경제난이 가중된 끝에 인민들을 먹일 식량까지 모자라는 형편이 돼버렸다.여기 저기 식량을 구하러 다니다 급기야 우리에게까지 손을 벌린 것이 바로 이번 쌀 제공회담이다.미·북 경수로 협상의 타결에 이어 이번 쌀제공 회담에서 북한이 보인 여러가지 변화는 현재 북한이 겪고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상당량의 재고가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에 무상으로 주기로한 15만t의 쌀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우리 국민이 12일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며 지난해 북한 쌀 총생산량의 10%에 가깝다.우리 쌀의 제공에 이어 일본 쌀까지 들여가면 식량난 해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많은 쌀을 아무 조건없이 북한에 선뜻 제공하기로 한 것은 북한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돕는다는 순수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였다.7월중 2차회담을 갖고 15만t 정도를 추가로 지원할 약속도 하고 있다.실로 분단 50년만에 남북간에 순수하게 이루어진 협력이다.이번 쌀제공이 그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트고 실질적인 교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도 대체로 지지하며 기대도 대단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소리도 적지않다.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주느냐.우리의 동포애를 북한이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고마워 할 것 같으냐.결국 북한 체제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등등의 여러가지 이유들이다.
실제로 북한은 쌀을 받아가면서도 여러가지 요구조건이 많다.주민들에게 남한에서 온 쌀을 감추려는듯 포장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쌀제공사실을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키로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게다가 『남조선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엉뚱한 선전을하는가하면 「남조선정권타도투쟁」을 선동하고 대남비난도 전보다 훨씬 강화하고 있다.엄청난 양의 쌀을 요구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한시라도 빨리 쌀을 보내려고 밤을 새워 도정을 하고 선적을 하고 있는 우리와도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감추려해도 남한쌀과 경수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감추지는 못할 것이며 결국은 대화와 개방으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 거대한 소련도 결국 무너지지 않았는가.
다만 우리측도 2차회담부터는 너무 서둘지 말아야겠다.서둘 필요가 없다.딱한 측은 북한이고 우리에게는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있다.
이번 쌀제공이 제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1995-06-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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