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문제 본격 거론하라”/헨리 홍 재미목사·미평화목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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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5-10 00:00
입력 1995-05-10 00:00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는 듯하다.미국은 나름대로 북한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북한의 속셈을 너무 모른다.미국이 북한과의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질질 끌려다녔다는 인상을 씻어버릴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증거이다.남한과 북한은 반 세기가 다 되도록 여러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무슨 결실을 얻었던가?
실제로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혼선을 거듭하여 의회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북한에 관한한 미국의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국무부 한국과의 북한문제 담당관이나 백악관·의회 그리고 협상실무자의 의견이 서로 달라 왔다.
미국은 실제로 북한의 감추어진 속셈을 파악하지 못하여 북한의 표면적 요구사항만을 놓고 씨름해왔다.북한은 미국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여 벼랑외교의 곡예를 부리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의 시간벌기에 휘말려 들었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명분없는 협상에 휘말려들었다 하여 공화계 의원들의 질타를 받는 고뇌를 겪기도 했다.미국이 대북한 협상에서 말려들어간 느낌을 지울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그 협상의 근본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카드 뒤에 숨겨진 궁극적 목표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것이었다.이것이 그들의 1단계 목표이다.그렇게 하여 동북아의 평화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미국의 한반도 내정간섭문제를 들고나와 대남정책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수년간 핵 불투명성을 유지하면서 특별사찰 시기를 최소 5년후로 미루도록 이끌어나간 것도 대미 평화협정의 가능성을 높이고,이 평화협정을 발판으로 대남 정치·군사전략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바로 북한의 내면적 전략이다.
미국은 전 인류의 가장 뚜렷한 대의명분인 북한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여 북한을 궁지로 몰아붙여야 했다.미국이 이 점을 깊이있게 이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북한의 인권유린의 심도와 실상을 깊이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귀순자 중에서도 안명철씨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지난 3월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초청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강연회를 가졌는데 2백여명의 미국인 북한 전문가및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석했었다.이 자리에서 필자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의 실태를 보고했을 때 그들은 글자 그대로 경악을 금치못하여 그 대학에서 필자에게 감사장을 주고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초청할 수 있도록 소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특히 회령수용소의 경비원이었던 귀순자 안명철씨가 폭로한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필자가 소개했을 때 미국인 교수·학생들은 물론 북한 전문가들까지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인권유린은 북한의 가장 큰 약점이다.김정일 교시에 따르면 수용소 인권문제는 『수령님의 권위와 위신에 관련되는 사항이니 완전 극비사항으로 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미국은 왜 이 약점을 이용하지 못하는가?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르고 있다.한국의 대북한 정책도 이점을 감안하여 가장 큰 인권문제의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와 더불어 인권외교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혼한 사람도 자기 자녀를 만나 볼 권리가 있는 법인데 반세기가 되도록 친족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도록 방해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권침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근대사법 백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대로 이제 우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북한인권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어 세계문제화해야 할 것이다.가능하면,북한 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만들어 인권 외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시급하다 하겠다.
1995-05-1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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