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이태동 서강대 문과대학장(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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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4-15 00:00
입력 1995-04-15 00:00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두가지 측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하나의 위기는 1970년대 미국의 여러 대학이 늘어나는 대학생의 수와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대학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만 하던 위기와 같은 성격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들이 치졸한 자본주의적인 경쟁방식인 프로파간더와 광고전쟁을 펼쳐서 대학고유의 존엄성과 자유에 심한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전자의 경우는 변화하는 사회에 있어서 대학의 기능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대학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무분별하고 저돌적 후진국형의 모험이다.

우리가 대학을 아끼고 존중하는 것은 대학이 지식의 산실일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인을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지식의 존엄성과 그 가치는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과정을 조심스럽게 밟는 지식인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대학이 사회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 정부의 정치적인 간섭을 배제하며 자율을 주장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받아들여지는것은 대학의 지식인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보다 더욱 많이 알고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만일 대학들이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사유없이 허위적인 명성이나 순간적인 이익을 위해 이데올로기에 눈먼 분노한 학생들이 대자보를 걸듯이,아니 대중의 눈을 끌기 위해 값싼 영화광고를 전신주에 붙이듯이 무분별한 정책을 남발했다가 밤사이에 거두어들인다면 대학의 권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대학의 위기는 대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대학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1995-04-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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