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냉전회귀 현상/홀로보프 영 킹스 칼리지 교수(해외논단)
수정 1995-03-17 00:00
입력 1995-03-17 00:00
러시아의 체첸공화국 무력진압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민주주의정치를 추구하는 한 그를 지원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서방세계가 그러한 다짐을 할 때 러시아정부의 일부 부서는 「국가기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일반시민의 움직임을 제한하도록 제의하고 있었다.냉전으로의 회귀현상이 러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연방방첩국은 서방의 주요 러시아연구단체의 활동을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랜드연구소·포드재단·하버드대학의 러시아·동구센터·스탠퍼드대학의 후버연구소를 비롯,미국의 주요연구소들은 미국정보기관의 전위대라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그러한 연구소들의 진정한 목적은 러시아의 안정을 무너뜨리는 일이며 그들은 첩보원을 고용,정보를 수집하고 러시아의 정보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두뇌유출」작전을 편다고 비난했다.
러시아보고서는 서방연구기관들이 세계의 유일한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역할을 확보하기 위한 워싱턴의 외교정책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것은 파격적인 형태의 정보수집을 통해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종합전략이라는 것이다.정보수집방법은 러시아연구원과의 접촉,여론조사실시,재정·기술지원 타당성조사를 빙자한 정보수집 등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미국의 유명한 3개 대학과 저명한 2개 모스크바센터에 의해 지난 1993년 3만9천명의 러시아인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도 모범적인 상호협력의 예가 아니라 미국이 믿을 만한 러시아정보를 얻기 위한 「재앙의 계획」이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러시아사회는 편집병의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 있다.러시아보고서의 작성자들과 같이 사람들은 미국정부가 그렇게 강력하고,보고서에 나온 기관들의 다양한 활동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믿을까.보고서의 분석은 민주주의사회,비정부조직,정보의 자유에 대한 혼란스러운 오해를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방첩기관은 서방세계의 연구기관 지원시스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많은 연구소나 대학 프로그램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그러나 민간이나 비정부조직으로부터도 지원을 받고 있다.모든 서방연구기관이 완벽한 객관성을 갖고 활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또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정부의 첩보원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지나친 생각이다.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분명히 언론자유의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다.러시아신문을 읽고 분석하는 서방전문가들에게 위협은 무엇인가.만약 국가기밀이 신문에 보도되면 러시아정부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그러나 연구원들은 무엇이 국가기밀이고 아닌지 일반적으로 잘 모른다.정말로 무엇이 국가기밀인가를 아는 것 자체가 하나의 국가기밀이다.
러시아방첩기관보고서에 담겨 있는 아이디어는 러시아정부의 정책을 반영하는 것일까.대답은 「그렇다」다.러시아 외무부는 알렉산더 루츠코이 전부통령의 해외방문특권을 거부했다.이유는 범죄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국가비밀을 갖고 해외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지금 러시아정치권의 주요이슈는 서방세계의 문화침략·경제착취·정치적 오만 등에 대한 비판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연구원들은 지금 방첩기관보고서에 함축된 의미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그들은 외국인과의 접촉이 중대한 의심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그들은 서방국가로부터의 장학금·연구지원금을 계속 받아야 할지 불안해 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서가 함축하는 의미는 더욱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만약 진지한 내부토론,특히 방위나 안보문제에 대한 논의가 봉쇄된다면 러시아는 체첸에서의 대실패와같은 어려운 문제에 빠질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저명한 러시아전문가들은 공산주의시대의 꼭두각시상황으로 돌아가 그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단지 윗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는 말만 정부에 말할 것이다.
러시아의 방첩기관은 이 때문에 과도한 통제기능을 버리고 「암흑시대」로부터 탈출하여야 한다.러시아정부·국회·과학센터·학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서방기관들과 교류를 해왔다.러시아방첩기관 분석가들도 이러한 교류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1995-03-1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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