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대밭 도시에 폭우 덮쳐“수해비상”/장대비속 고베 복구현장 스케치
수정 1995-01-23 00:00
입력 1995-01-23 00:00
22일 아침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고베의 집 지붕을 온통 파란색으로 바꾸었다.지난 17일의 지진으로 지붕이 파손된 집들이 빗물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파란 플라스틱으로 지붕을 덮은 때문.일부 파손됐더라도 그나마 집이 남아 있는 사람은 다행인 편.혼잡한 임시수용소보다는 야외가 더 낫다며 야외에서 생활해온 일부이재민은 22일 폭우에 황급히 임시수용소를 찾는가 하면 일부는 모포에 타르를 칠해 방수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에겐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는 관계없이 궂은 비를 뿌려대는 하늘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다.용케 방수포 한장을 구한 니시카와 노보루씨는 『전가족 7명이 한장의 방수포에 의지해 비를 피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곁에는 75세된 누이가 젖은 몸을 떨며 앉아 있다.이들은 영하를 밑도는 차가운 날씨에 비까지 내리자 독감이 유행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고베 집지붕 파란색
그러나 대부분의 고베시민은 쏟아붓는 장대비에도 불구,그동안 끊긴 전기와 수도 등이 상당부분 회복된 데 힘입어 복구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지진으로 지반이 약화돼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현재 피해지역의 복구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돼 고베시 전지역의 40%에 수돗물과 가스공급이 재개되기 시작했다.고베시당국은 1백50만 시민 가운데 이제 1백만명에게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또 일부가 임시영안실로 사용되고 있는 고베시내 3백여개 학교중 3분의 1가량은 오는 23일부터 수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곳곳 산사태 우려
시내 곳곳에서는 불도저가 동원돼 지진으로 갈라진 도로를 메우는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재민을 위한 1천가구분의 임시주택건설이 시작됐다.
이밖에 건물이 추가로 붕괴될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건물을 부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며 피해가 경미한 건물에 대해서는 보수작업을 벌이고 있다.지진으로 운행이 중단된 후쿠치야마선과 한큐 이타미선이 정상운행되기 시작했으며 이들 복구된 선로와 뱃길을 통해 지진피해복구를 도우려는 자원봉사자와 구호물자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
○가스·전기 공급 시작
고베시를 비롯한 피해현장에는 현재 일본자위대와 소방대원·경찰관·민간자원봉사자 등 5만명이 투입돼 구조및 복구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또 생존자 수색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스위스구조단에 이어 프랑스에서 파견된 60명의 구조요원과 4마리의 수색견이 이날 아침부터 작업에 합류했다.그러나 복구과정에서 사망자의 시체가 속속 발굴되면서 사망자수가 이날 현재 5천명에 육박하자 구조대원들은 물론 일본당국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베=박은호특파원>
◎정정 잠재운 일지진/사회당 분열상 주춤/우파의원 24명 탈당계 제출하자 비난 빗발/“복구가 우선” 결행 유보한계 거리모금 활동
지진으로 정치권이 바빠지면서 일본 사회당의 분열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다.사회당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에게 뜻밖의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지진 발생 전날인 16일까지만 해도탈당파인 야마하나 의원등 24명은 원내교섭단체로서의 사회당 이탈계를 제출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도 불사하기로 했었다.20일부터 시작되는 통상국회에는 새 교섭단체를 구성해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겠다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17일 일어난 대지진은 이런 움직임을 한순간 정지시켜 버렸다.
좌·우파사이에서 중재 활동을 벌여오던 구보 서기장은 20일 『지진대책이 최우선 과제다』라고 전제하면서 『복구체제가 궤도에 오르면 신교섭단체 구성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그는 또 『이번 국회는 지진대책과 그 예산 문제를 다루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해 분당 움직임을 둘러싼 첨예한 당내 갈등에 한숨돌릴 여유가 생겼음을 숨기지 않았다.
야마하나 의원 등도 이번 국회는 사회당 소속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야당인 신진당이 정부 여당에 먼저 정치휴전을 제의할 정도로 지진은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진대책에 묶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이 발생한 바로 그날 아침 TV뉴스에 교섭단체 이탈계를 제출할 것이란 보도가 나가자 야마하나 의원 사무실에는 『비상사태에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비난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야마하나 의원은 18일 『신당결성 활동은 계속한다』고 말하면서도 지진대책을 국회가 심의하는 동안 새 교섭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했다.그리고 19일에는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벌인 사회당 모금 캠페인에는 사회당의 띠를 두루고 모금함을 들고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신당 결성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지진발생지역인 효고현 출신의원들이었는데 정부 여당의 지원이 절실한 지금 무라야마 총리에게 활을 겨누기가 쉽지 않은 처지다.우파는 결국 2월초 신당 결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2월말 정도로 미루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무라야마 총리쪽은 2월11일 예정의 임시당대회에서 당기구로 신당준비회를 구성해 우파의 기선을 제압하는 방안,지진대책에 2개월이 걸리면 그 다음에는 지방선거가 이어지므로 임시당대회도 연기하고 느긋하게 대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무라야마 총리는 이번 지진으로 국가적인 위기상황 대처에 서투르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당내 문제에 대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벌고 있다.<도쿄=강석진특파원>
1995-01-23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