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김창화 연극평론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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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2-17 00:00
입력 1994-12-17 00:00
요즘 들어 가끔씩 「과연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때가 있었고,막연한 성취욕에 불타 바쁘게 지냈던 적도 있었다.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향유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그러나 물질적인 만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듯 삶의 방식과 의미에 대한 생각들이 세월과 함께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퇴색해 가는 젊음에 대한 염려로 운동을 하고 담배를 끊고 음식과 술을 절제하면서도 황폐해져 가는 정신을 건져낼 대안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하게 된다.모든 것이 풍요로울때 인간은 자만에 빠지게 되고 오직 자신만의 안녕과 영화를 생각한다.그렇게 엄청난 권력과 세도를 지녔던 진나라의 시황제도 결국 죽어지면 끝이다.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병사와 무기도 그의 마지막 숨길을 연장시키지 못했으며 그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었다.

죽음앞에서 인간은 삶을 그리워하게 되고 결국 인간의 한계를 배우게 된다.그래서 인간의 조건은 삶의 조건과도 같다.즉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가」라는 물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에겐 정신과 육체가 있다.그리스인들은 균형잡힌 육체에 조화로운 정신이 깃들인다고 했다.육체의 고통은 사람의 정신마저 괴롭히며,정신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의 육체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물론 반대의 경우와 예외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건강과 미용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삶의 조건을 포기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새로운 인간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사는 보람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94-12-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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