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광복 50돌/1인당 GNP 121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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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24 00:00
입력 1994-11-24 00:00
앞으로 한달 남짓 남은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는 해.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지 글자 그대로 반세기가 꽉 차 간다.그동안 우리는 세계의 다른 어느 민족이 같은 시간 동안 겪었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를 경험했다.변화의 주체인 우리 자신들조차 광복 당시 사회상을 담은 사진 혹은 기록에서 현재 모습의 가능성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반대로 현재의 모습에서 당시 사회상을 복원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거의 무에서 출발해 오늘날 국제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올랐다.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일본영향권에서 벗어나 서구영향권에 편입됐다고 할 수 있다.그 50년의 변화상을 각종 통계수치를 통해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인구◁
통계청이 올해 7월에 발표한 남한인구는 4천4백45만명이다.남북한을 합치면 6천7백만여명.광복전해인 1944년 남한 인구가 1천5백88만명,남북한 총인구가 2천5백92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0년동안 남한은 2.8배,남·북한 합하면 2.6배가 늘어난 셈이다.
▷문맹◁
해방 당시 문맹자는 전체 인구의 77%에 달했다.거의 2천만명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른바 「까막눈」이었다.그러나 40대 이하의 경우 정신·신체적인 장애 등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문맹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던 높은 교육열의 덕분이다.이 높은 교육열이 또 거의 기적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성장을 선도했다.
▷자동차◁
자동차의 증가율 또한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 하다.광복 당시 자동차 보유대수는 태평양 전쟁 말기 등장한 목탄차까지 포함해 1만5천대에 불과했다.그러나 11월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7백2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교통부는 집계하고 있다.최근에는 하루에 3천대씩 늘어나고 있다.광복 당시 자동차 총수는 현재 5일동안 늘어나는 자동차숫자에 지나지 않는다.▷수출◁
한국무역협회가 예상하는 올해 수출액은 9백34억6천5백만달러,수입액은 9백93억2천8백만달러이다.집계가 시작된 1962년 수출이 2천8백만달러,수입이 2억1천4백만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수출은 3천3백40배나 늘어난 것이다.
품목별 수출액을 보면 1948년에는 전체 수출액 가운데 오징어 38.4%,김 14.6%,한천 6.3%,광물 등 기타 40.7%였다.수출이라기보다는 천연자원을 캐거나 잡아서 그냥 내다판다는 표현이 옳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올해 수출품은 전기·전자·화학·일반기계·자동차·선박 등 중화학공업 제품이 63.2%,경공업 제품이 26.4%로 1차산품은 3.9%에 불과하다.중화학공업 제품 가운데는 전기·전자가 49%,화학이 9%,자동차가 7·7%,선박이 6·4%,일반기계가 6·2%를 차지한다.
▷GNP◁
1인당 총생산(GNP)은 올해 8천1백30달러에 이를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하고 있다.1953년 67달러에 비해 무려 1백21배 늘어났다.
경제지표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각종 사회·문화 지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도서관◁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43년 각종 도서관은 전국에 42개 뿐으로 장서 또한 86만권에 불과했다.장서는 일본 책이 82만3천권,한문으로 된 책이 3만6천권이었으며 한글로 된 우리 책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이에 비해 지난해 말 현재 우리의 도서관 수는 7천8백78개이고 장서 또한 6천9백55만4천권에 이른다.
단순계산으로 도서관 수는 광복 당시에 비해 1백85·4배가 늘어난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의 도서관 운동은 아직 초보 단계라는 지적도 있다.많은 선진국들이 우리와 같은 국민소득을 올리던 시기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타◁
또 광복 당시 우리나라에는 6개의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발사하고 있었다.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청취자수는 16만4천8백10명에 지나지 않았다.한국인은 전체 인구의 0.7%만이 라디오라는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던 셈이다.그러나 라디오는 벌써 그 역할을 TV와 비디오 등 다른 매체에 내준지 오래다.
총독부는 19043 한햇동안 2천6백59만2천명이 영화관을 찾은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또 이 해에 연극관람을 한 사람은 4백21만9천명에 이른다.국민 여섯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연극구경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비해 전국극장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을 찾은 사람은 모두 4천4백5만6천명이다.국민 한사람이 극장을 찾은 횟수가 광복 당시에는 1.07회,지난해는 1.1회로 큰 차이가 없다.그러나 이 거의 변하지 않은 수치에서 사람들은 50년동안 사회의 큰 변화를 읽어내고 있다.
이처럼 문화에 관한 한 통계치의 변화가 꼭 발전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광복 이후 한세기의 전반이 경제성장률에 보람을 느꼈던 시대라면 그 후반이 될 내년 이후는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데 자부심을 갖는 시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서동철기자>
1994-11-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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