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정재(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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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20 00:00
입력 1994-11-20 00:00
우리 속담에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삼두)이고 홀어미 3년이면 은이 서말이라」라는 말이 있다.똑같은 홀앗이 신세라도 홀아비는 궁상맞고 한심하지만 홀어미는 정갈하게 재산까지 모으고 산다는 뜻이다.은 서말이 얼마만한 재산일지는 모르겠으나,요즈음 사람들은 본적도 없을 이라는 벌레는 사람몸에 기생하며 근질근질 가려움증을 유발하고 피를 빨아먹는 해충이다.궁기의 상징인 이것에 비하면 은은 어마어마한 재산이다.

지아비를 잃고 홀어미로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또 12억이나 나가는 거액의 재산을 대학에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행상노릇을 하면서 한평생 모은 재산이다.그 재산을 모으기 위해 그 홀어미가 겪었을 간난과 신고는 얼마나 심했을까.참으로 놀라운 삶을 살아냈을 것이다.손톱자랄 사이가 없을 만큼 근면하게 일하며 금욕적인 근검으로 모은 태산보다 큰 재산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모은 재산이므로 한푼도 차마 허랑허랑 다칠수가 없었을 것이다.그러니 그런 돈을 무엇에 쓰면 맞겠는가.천상 걸맞은 쓰임새는 장학기금같은 것이었을것이다.동국대에 12억재산을 내놓은 장내순할머니도 그래서 그렇게 정했을 것이다.

장할머니 말고도 기왕에 여러 할머니들이 그런 정재를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우리에게는 이런 독특한 할머니자원이 있다.부덕으로 정신을 무장하고 성장하여 참을성과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며 살아온 세대.그분들에 의해 우리의 법도가 이어지기도 했고 미풍양속이 전수되어오기도 했다.

자손들이 허랑방탕하는 일을 경계하는 엄격한 지주가 되기도 하고 기운 집안을 일으키는 여장부도 되고 버릇없는 자손들을 훈육하는 사표이기도 했으며 자애와 온정으로 따뜻한 기운을 세상에 심는 자애의 근원이기도 하였다.

근대화와 함께 그런 할머니들이 사회성을 띠게 되면서 「장학행위」가 또하나의 모형으로 보태지게 된 것이다.이 「할머니」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신적 자원이다.
1994-11-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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