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운건 「문둥이 엄마」 품인가(박갑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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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16 00:00
입력 1994-11-16 00:00
외국으로 이민간 경우의 유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걸쌈스런 꿈을 안은 농업이민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 이유에 의한 피신성의 것에서부터 학문적 성취욕에 따른 웅지형의 것등등.

그러나 개중에는 냉전기류에 휩싸여 있는 조국이 두렵고 싫어서 얼굴을 두르고 살수 없었기에 떠난 도피성의 것도 없는게 아니었다.아니,50∼60년대의 경우 이게 으뜸자리였다고 해야겠다.그 가운데는 파렴치한 행동으로 떠난 범죄형의 경우도 끼인다.

그 50년대 삼오당 김소운의 글이 가슴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독서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던 그의 「목근통신」(목근통신:일본 「중앙공론」에 실렸던 글의 한국판)의 끝부분에 언급한 내용이 그것이다.

한 미국인 친구가 그에게 당신이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몇십배 더 많은 일을 했으련만 안타깝다고 했을때 그는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는 않겠습니다』

그가 말한 「어머니」는 물론 병들어 신음하는 「조국」이었다.그 말은 그당시의 상황에서 조국을 등지는 사람들에 대한 뼈아픈 회초리이기도 했다.그후 훨씬 더 세월이 흐른 다음 그는 이 대목을 구체적으로 풀어 말한다.『…지식인·유명인들이 이민 명목으로 나라를 떠나는 것을 나무라자는 것은 아니다.…다만 남의 나라에서 찾아보지 못할<조국의 맛>­그것을 황홀한 행복으로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은…』(어수원잡필:조국의 맛).

한국국적을 도로 찾는 사람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지난해에 5백89명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6월까지의 상반기 동안에만도 그 수준에 이르렀을 정도라니 놀랍다.이들 모두에 대해 싸잡아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감탄고토)는 논리로 고까운 시선을 보낼 일은 아니다.정치적 상황이 풀려 돌아온 경우도 있고 「조국의 필요성」이 불러들인 사례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오고가고 2중이 되고 하는 일에 너무 강팔지게 굴건 없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일부의 역이민에게서는 「문둥병」이 나아간다니까 찾아와 반가운듯 『어머니!』하는 듯한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그것이 「문둥이 어머니」를 구완해온 사람들의 마뜩찮은 심경일수 있다.하지만 어쩌랴.그게 사람마음인 것을. 『아아,사람은 약한 것이다,여린 것이다,간사한 것이다…』(만해 한용운의 「이별」에서).그들에게까지도 너그러운 것은 역시 「문둥이 어머니」 품인가.
1994-11-1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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