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질/강한섭 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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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08 00:00
입력 1994-11-08 00:00
그러나 오래간만에 찾아본 외국소설의 진열대에서 필자는 커다란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제인 에어」와 같은 고전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를 잇는 미국소설과 영국소설의 연결고리는 도대체 찾을 수 없었다.이러저러한 외국소설들은 많이 출간되었지만 거기에서 출판의 깊이와 체계를 찾기가 어려웠다.양적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속이 빈 허황된 발전이었다.좀 과장하자면 우리는 어쩌면 60년대의 「명작전집시대」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월부로 구입한 전집을 자랑스레 거실에 전시하던 때가 이제 아득할 만도 하고 그때에 비하면 외국문학의 전공자만도 10배 이상이나 늘었을 텐데…
이런 빛좋은 개살구의 상황은 영화분야도 마찬가지다.전세계의 연간 영화제작 편수는 4천여편에 불과하다.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은 이중 4백여편을 들여오고 비디오 분야에서는 무려 1천여편을 수입한다.여기에 주평균 7편의 외국영화를 방영하는 텔레비전까지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전세계의 거의 모든 영화를 수입하는 셈이다.
이렇게 외국영화는 쏟아져 들어오지만 우리나라에 앉아있으면 세계영화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은 거의 수입되지 않기 때문이다.출판문화와 마찬가지로 영화문화도 겉만 요란하지 속이 비어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문화의 「대량공급시대」로 급속하게 접어들고 있다.일간지가 주간지보다도 더 두꺼워지고 방송은 매체 분화 뿐만 아니라 채널증대 그리고 24시간 방송으로 달려간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문화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문화는 근본적으로 양이 아니라 질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1994-11-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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