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사와 부실정치(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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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25 00:00
입력 1994-10-25 00:00
성수대교 붕괴사태는 종래의 냄비기질과 소나기식 대응자세로라면 상당기간 우리사회와 정국에 충격과 혼미의 홍역을 치르게 할 것같다.성수대교관련 일변도식 보도와 정국은 다른 더 큰 뉴스가 나오거나 관련뉴스거리가 고갈되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며칠동안 민심수습용의 내각총사퇴론과 정부의 사과,언론의 집중보도와 감성론의 분위기지배등 그동안 큰일이 터졌을 때와 똑같은 패턴의 대응양상을 보면서 일말의 우려와 불안을 금할 수 없다.또다시 시끄럽기만하고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던 스테레오타입의 부실과 졸속을 되풀이할 것같아서다.

우선 정치나 언론이나 최우선적 현안에 관심을 쏟는 것은 속성상 당연하지만 다른 국정은 젖혀두고 성수대교 하나에만 매달리는 단선적 자세는 안된다.성수대교사태를 계기로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국정과 함께 해나갈 일이지 그것 때문에 다른 부분이 마비되거나 소홀히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본말전도가 있어선 안된다.

언론들이 성수대교관련보도에 열을 올리는 동안 북한핵문제가 중요이슈에서 실종되고 예산국회활동이 주춤해진 것은 중대한 역작용이다.미국 북한합의에 따른 우리의 경수로건설비용은 어떻게 되며 북한에 대한 대체에너지비용의 부담문제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따지고 밝혀야 할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예산심의와 치안문제등의 민생현안,세계무역기구가입비준동의안등 산적한 국정의 논의와 처리문제와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야가 서로 정치공세의 초점을 희석시키려한다느니,호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당파적 자세를 취한다느니 하는 유치한 다툼은 버리고 성수교문제를 비롯한 모든 국정현안에 대한 정책대안을 중심으로 하는 대결을 벌여야 한다.부실정치를 가져오는 과거식의 정치방식은 고쳐나가야 한다.원래의 국회일정을 보류하고 다른 국정논의를 미루는 정치공세의 본회의공전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이끌어나가는 데는 특히 야당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



우리는 차제에 정치와 행정등 모든 분야에 만연한 정치논리를 추방하는 탈정치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사회가 그동안 민주화과정을 겪으면서 원칙론과 원칙론자들은 고지식한 사람으로 치부되어 설자리가 없게 되었다.집행기구의 책임자들이 매사를 여론과 윗사람 눈치를 살피는 정치병에 걸려 있는 형국이다.정치권이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치방식을 보임으로써 그런 흐름에 앞장을 서고 있다.전문가들과 행정가들의 지혜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천가능하고 실효있는 대책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부실공사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길은 곧 부실정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1994-10-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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