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사과담화­총리사표 반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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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25 00:00
입력 1994-10-25 00:00
◎정치적 문책보다 “재발방지” 처방/“총체적 부실” 치유의 필연적 대응책/민심수습 겨눈 사후조치 뒤따를듯

김영삼대통령은 24일 성수대교참사와 관련,관행으로 본다면 조화가 되지 않는 두가지 조치를 취했다.이영덕 국무총리의 사표를 되돌려주고는 이날밤 TV에 나와 국민에게 직접 사과한 것이다.

○두가지 조치 결단

총리의 사표를 반려할 사안이라면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반대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정도라면 총리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상례였다.둘다 정치·도의적 책임선상의 조치들이란 점에서 그렇다.또한 오랜 권위주의 아래서의 정치관행이 이런 국민정서를 만들어온 측면도 있다.

김대통령이 총리의 사표를 사흘동안 장고 끝에 반려한 것은 정치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행정적인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대통령의 참모들은 야당의 인책공세가 시작된 뒤 『총리를 바꾸기는 쉽다.그러나 바꾸고도 아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반려의 가능성을 시사해온 터다.

총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하면서 「죄송스런 마음으로」 완벽한 사후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스럽다는 것이다.이 사건이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부실화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때 청와대의 이런 판단과 사표반려는 적절한 조치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리의 사표를 반려할 것이면서도 사흘이나 잡고 있었던 데는 두가지 측면의 해석이 가능하다.하나는 안전조치의 강구를 대통령이 항상 총리를 통해 지시한 점을 들어 이를 착실히 챙기지 못한 총리에 대한 유감의 표시라는 점이다.두번째는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비록 사표를 반려하더라도 국민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생각했음직하다.

대신 김대통령은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직접 국민에게 사과하는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했다.대통령의 사과는 지난해 쌀 개방결정 후 이번이 두번째다.대통령의 잦은 사과는 권위의 약화와 그에 따른 계산할 수 없는 크기의 국정수행능력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역대대통령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행위였다.그럼에도 김대통령이 스스로 이를 택한 것은 이 사건으로 받은 국민의 상처가 너무 깊고 광범위한 것으로 느끼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불가피한 선택”

김대통령이 총리의 사표를 반려한 데는 사안의 성격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는 측면 말고도 시기적으로 내각을 개편하기 어려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여권의 처지에서는 올 정기국회가 어차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비준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때문에 파행국회와 WTO비준안 현실화에 따라 흐트러질 민심을 수습하고 산뜻한 분위기에서 지방자치제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연말쯤 대대적인 당정개편이 불가피한 형편이다.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수습을 위해 개각을 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또한 조속한 시일안에 사고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나,국회대책등을 고려할 때도 지금 갑자기 전국무위원의 사표수리를 의미하는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야당이 사건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줄기차게 인책공세를 펴고 있는 것도 사실은 이처럼 개각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곤궁한 청와대의 처지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정치적 조치는 이정도로 끝내는 대신 강도 높은 사후대책과 관련자 문책으로 국민을 납득시키려 할 것이다.야당의 공세가 계속되고 국민의 이해수준이 낮을수록 그 강도도 따라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김대통령이 연이어 사후대책을 직접 지시하고,정치·도의적으로 이미 인책한 이원종 전서울시장등의 사법처리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영만기자>
1994-10-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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