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픔 정책」에 충격요법”/홍 부총리 「기획원 길들이기」 시동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4-10-08 00:00
입력 1994-10-08 00:00
◎관료들 “재무부와 성격 다르다”… 텃세 극복여부 관심/취임식서 「쌀알론」으로 질타/차관보,예상 깨고 파격 인사/오찬서 폭탄주 돌려 단합 강조

전천후 축구선수인「리베로」라는 별명을 지닌 홍재형 경제부총리가 예상보다 빨리 경쾌한 몸놀림으로 볼 컨트롤에 나섰다.

지난 5일 취임 일성으로 경제기획원 관료를 『구름 위에서 노는 사람들』,『쌀알』로 표현해 「파문」을 일으킨 홍부총리는 6일 공석 중인 기획원 차관보에 예상을 깬 인사를 발탁,본격적인 「기획원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기획원 차관보는 우리나라 경제정책 수립 및 집행의 실무사령탑.연초 정재석 전 경제부총리의 기구축소에 따라 대외업무까지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이다.기획원 출신의 고참 1급인 이기호 총리실 제 2조정관이나 장승우 국회 예결위 전문위원이 수평 전보되리라는 예상을 깨고,2급인 안병우 정책조정국장을 막바로 승진,내정했다.

홍부총리는 취임 때 「신상필벌」의 원칙을 강조하며 뭔가 과거와 다른 인사스타일을 예고했다.종전처럼 서열과 관록 위주의 인사를 지양하고 파격적으로 기획원의 간판 격인 차관보에 국장을 승진,발탁한 것은 「쌀알처럼 흩어진」 기획원의 「뜬 구름식 정책」에 충격요법식 변화를 주려는 용병술로 보인다.

이번에 친정으로 복귀한 강봉균 차관도 『기획원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홍부총리의 입장에 맞장구를 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지금 기획원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본질적으로 라이벌 관계인 재무부와의 시각 차이에서 빚어진 측면이 크다.홍부총리가 재무장관에서 곧바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홍부총리는 『쌀알처럼 흩어진 기획원에 비해 재무부는 끈끈한 조직력에 의존한다』며 재무부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또 『기획원은 이론 뿐 아니라 현실감을 갖춰야 조정통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뼈아픈 충고를 했다.7일 기자들과 가진 오찬석상에서 홍부총리는 「폭탄주」를 딱 한잔씩 만들어 좌중에 돌리는 호기를 보였다.폭탄주에 비합리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합을 과시하는 상징으로선 여전히 유용한 것 또한 사실이다.역대 어느 경제총수들로부터도 볼 수 없던 파격이다.

기획원 관료들은 홍부총리의 현실감각 강조에 아직 무덤덤하다.세제·금융 등 핵심 정책수단을 장악한 재무부가 보수적인 반면 기획원은 창의적·진취적일 수 밖에 없고,개인능력에 의존하는 기획원 스타일은 단점이자 장점일 수 밖에 없다는 반론이다.

새 정부 들어 한리헌 청와대 경제수석,강봉균기획원·이석채농림수산·김태연노동차관과 오세민공정거래위원장,김인호철도청장 등 차관급만 해도 7∼8명을 양산한 기획원의 저력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홍부총리의 「길들이기」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그는 재무부에서도 신참 국장을 청와대로 보내는가 하면 1급인 국세심판소장에 서열이 한참 뒤지는 인물을 발탁했었다.앞으로 기획원의 후속 국장급 인사에서도 예상을 깨는 인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홍부총리는 7일 과천청사를 방문한 클라우스 체코수상과의 간담회에서도 『안녕하십니까』라는 체코어를 미리 외어 인사하는 등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신중한 성품이다.약속대로 경제팀의 조화를 이루고,텃세 심한 경제부처,특히 「구름 위」의 기획원을 어떻게 장악할지,「리베로 홍」의 향후 운신이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정종석기자>
1994-10-08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