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포기 않고 경제살리기 고육책/한국기업체 투자유혹 손짓 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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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02 00:00
입력 1994-10-02 00:00
북한당국이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올들어 부쩍 남한 자본 유치를 겨냥한 물밑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가 최근 우리측 해덕익스프레스사와 대호건설에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 일부에 대한 토지이용권 및 광고이용권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내온 것이 대표적 사례다.최근 북측이 가장 부족한 물품 중의 하나인 플래스틱과의 맞교환을 염두에 두고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측에 북한산 생수의 공급권을 주겠다는 의사를 간접 타진해 온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당국이 최근 대외경제협력추진위 북경 거점인 고려민족발전협회를 대폭 강화,우리측 기업인들에 대한 접촉을 늘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북측 인사들은 한국측 경제인들을 만날 때마다 『핵문제는 곧 타결될 것』이라면서 투자논의를 서두를 것을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북한이 한국의 특정기업을 지정하면서 까지 개발권을 주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담보서」를 보내온 것은 파격적인 일이다.그런 만큼 북한당국의 다목적 계산이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당국은 이에 대해 북측이 핵카드를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기도로 파악하고 있다.즉,핵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릴 경우 기업인 방북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우리측의 핵·경협 연계정책을 우회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북한으로선 설령 남한 기업과의 직간접 접촉을 통해 필요한 자본을 유치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민간기업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라는 분석도 있다.경제분야에 적용하고 있는 통일전선전술인 셈이다.
물론 남한 기업에 대한 북측의 추파는 당면한 경제난을 해결하지 않으면 체제유지가 어렵다는 절박감을 반영하고 있다.다시 말해 나진·선봉경제특구에 당초 기대했던 서방자본의 유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고육책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84년 9월 합영법 제정이후 잇단 법령 정비와 올 상반기중 자본주의 바람의 북한 전역 확산을 막기 위해 나진·선봉지역 주변에철조망을 치는 등 외자 유치를 위한 1차 정지작업은 완료했다.
그러나 그동안 외국으로 부터의 대북투자 총액은 1억5천만달러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 투자기업도 일본의 조총련계 기업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여 왔다.북한의 대외 신용도 추락과 핵문제로 인한 정치·경제적 위험부담과 사회간접자본 부족 등 불리한 투자환경으로 인해 기대했던 미국,일본,독일 등 서방기업의 실제 대북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요컨대 북측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대북 투자 환경을 감안,본격적인 서방자본 유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도 남한기업들의 대북 투자유인을 자극할 필요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올들어 남북을 오가며 중개역을 맡고 있는 이철호 연길시 선호기업집단 대표 등 중국교포 기업인들이 서울행이 잦아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구본영기자>
1994-10-0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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