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무얼하고 있는가(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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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9-29 00:00
입력 1994-09-29 00:00
「지존파」의 집단살인극에 대한 악몽이 채 가시기도전에 이번에는 부녀자 연쇄납치 살해·성폭행·강도사건이 발생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훔친 택시에 변조된 번호판을 달고 부녀자 6명을 차례로 납치한 범인은 이들을 성폭행하거나 심지어 2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이 「광란의 범죄」를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분노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이번 사건의 특징은 범인과 아무런 원한도 관련도 없는 시민들이 살해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운 나쁘게 그시간에 문제의 택시를 탔다는 우연성만으로 희생된 맹목적인 살인인 것이다.지난번 「지존파」살해사건도 마찬가지였다.살인의 구체적 동기가 없이 『무작정 죽이려했다』는게 자수한 범인의 말이다.더구나 살해대상을 자기의 나이대로 38명으로 정했다고하니 이 무슨 해괴한 광기인가.맹목적살인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지존파」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연쇄납치사건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인명경시풍조와 살인불감증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생각된다.도덕과 건강한 상식으로 지탱되던 우리사회의 한구석이 왕창 무너져내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감마저 든다.

이번 사건에서 범인은 8월28일쯤 20대 여자승객을 납치하려다 실패한 이후 한달동안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연속적으로 범행을 되풀이 해왔다.그러나 경찰의 검문에 단한번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간다.

게다가 늘상 지적되었던 경찰의 공조체제가 이번에도 허점을 드러내 범인에게 더많은 범행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세번째 피해자인 권모씨가 납치된뒤 김제경찰서는 지난 6일쯤 범인의 신원을 확인했음에도 독자적 수사를 벌여오다 20여일이 지나 뒤늦게 지명수배한 것으로 알려졌다.범인체포의 공을 다투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이때문에 마지막 세차례의 범행은 막을수도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국민들이 『무서워서 외출도 못하겠다』고 할 정도가 되었으니 체감으로 느끼는 민생치안은 「부재」인 셈이다.대낮에 차로 납치되고 아무 이유없이 끔찍한 주검으로 끝나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공포와 불안은 당연하지 않겠는가.정부는 연초 생활개혁10대과제를 선정하면서 「민생침해 범죄소탕」을 세번째 순위로 올려놓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생치안이 이 지경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받게되었으니 참으로 심각한 사태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경찰은 강력사건에 대비해 민생치안을 위한 체계확립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장비의 낙후나 인력의 부족을 구실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튼튼한 민생치안의 확립으로 실추된 경찰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1994-09-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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