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책,시급한 현실 문제다(사설)
수정 1994-09-11 00:00
입력 1994-09-11 00:00
부모보다 앞서는 자식을 우리는 불효라고 했다.그러므로 연노한 부모를 두고 늙음을 맞는 자식들은 자기손으로 부모의 주검을 추스르지 못하고,노부모보다 앞서는 「불효」를 저지르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된다.그래서 부모들이 『내손에 풀기 마르기 전에 내 앞에서 돌아가시기를』 빌기도 한다.생전의 부모를 잘 모시는 일도 중요하지만 돌아가신 뒷감당까지를 다해야 효성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온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효도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병약하여 자신도 건사할 수 없는 늙은 아들에게,대신 맡길 곳이라곤 없는 백세 가까운 노모는 너무도 감당하기 벅찼을 것이다.자신이 떠난 이후 어디로 어떻게 던져질지 모를 짐덩어리 같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현듯 노모의 목을 누르게되는 충동의 유혹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리 아흔살 노모라도 부모를 해친 아들의 일이 당연하다거나 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다만 이런 막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이 이 땅에 너무 많이 만들어진다는 현실이 문제다.난감하고도 감당할 방법이 전혀 없는 이런 일이 바로 나의 일로 불원간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 작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노령화사회에 이미 들어섰으면서도 거의 아무런 대책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시급히 타개되지 않으면 안된다.전체 9%에 이르는 단독가구중 27%가 노인 단독가구이고,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이상한 현상속에 있는 우리사회에서는 혼자 살던 노인의 주검이 부식이 다되도록 발견되지 못하는 일이 이제 예사로워지고 있다.허울만 남아 있는 경로효친사상의 위선적 잔재에만 매달려 속수무책으로 방치할 수는 없는 시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방식의 「효도법」논의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세월이 너무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재가노인을 돌보아주는복지제도나 일일탁로제도·유료양로시설제도의 다양화와 부양가족문제의 실질적인 검토등 예산을 핑계로 외면하지 말고 우선적으로 점검해볼 만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특히 자식으로 하여금 부득이한 불효를 저지르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연구해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자식으로서의 본능적 가책의 마음은 우리가 지닌 효심의 한끝이기 때문이다.7순의 병든 노구로 패륜의 멍에를 진 한 잘못 끝난 효성을,연민만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을 이대로 방치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1994-09-1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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