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아름다움/강우방(일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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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8-28 00:00
입력 1994-08-28 00:00
문학만 하더라도 셰익스피어,괴테에서 도스토예프스키,카뮈,카프카등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시와 소설에 깊이 빠졌다.음악도 늘 서양 고전음악에 심취되었고,서양미술의 그 현란하고 극적인 끊임없는 이념의 대결과 실험은 나를 흥분케 하였다.
서양철학에 들어서면 그 심도는 더 깊어지고 강해진다.서양영화는 너무도 경이적이어서 영화관에서 나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와같이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시절은 매일매일 서양문화의 이해와 습득의 나날이었다.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문화 더 나아가 동양문화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넘어서서 도외시하기에 이를 지경이었다.서양문화의 현란함에 비하면 그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고 극복되어야 할 것이며,매우 초라하게 보였다.무엇보다도 우리 것,동양 것이 그토록 낯설어 보였다.
그런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왔다.그것은 바로 주변의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을 지니게 된 사실이었다.나는 대학시절 전공에 아랑곳 없이 화가가 되기를 염원하여 비너스,아그리파등 석고상을 데생하는 것을 배웠다.햇빛에 비춰져 나타난 석고상의 음양의 미묘한 변화를 세밀히 관찰하여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습성이 몸에 배게 되었다.
그 후로는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을 관찰하면서 스케치하였고,버스를 타고 갈때도 전과는 달리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도시풍경과 농촌풍경을 뚫어지게 관찰하게 되었다.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실로 엄청난 큰 변화였다.그런 사이에 나는 전국 어디에고 홀로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하기 시작하였다.목포·진도·제주도·한려수도·충무·경주·부여·설악산·강릉등지로 다니며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고 스케치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한국미술을 연구하기로 나의 인생행로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는데 역시 처음에는 우리 미술이 매우 낯설어 보였다.이제 박물관에 몸담고 우리나라 미술을 연구한지 25년이 되었다.그러나 그 낯설음을 극복하기에는 처음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나의 눈과 머리와마음에는 그만큼 서양문화가 깊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 것을 알려면 인도·중국·일본등 동양문화에도 관심을 두어야 그 차이를 비교해 볼수 있다.
그러는 사이 동양과 서양의 근본적인 차이는 물론 같은 동양문화권에서도 인도·중국·일본·한국의 문화와 미술이 그토록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 놀랐다.
우리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전통음악의 가락도 가슴에 밀려들고 우리의 옛 미술품의 특성도 파악할수 있게 되었다.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확인할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오랜 내밀의 관찰과 비교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후로는 서양미술에 비하여 우리 것이 못하다는 열등감에서 비로소 해방될수 있었다.아니 오히려 두가지를 모두 객관적으로 비교하면서 각각의 특성을 파악할수 있게 되었다.그 두가지 사이에는 우열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의 것을 잘 알게 되니 오히려 런던·파리·로마·뉴욕에서 만나게 되는서양미술의 특성을 더 잘 파악할수 있게 되었고,더 나아가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더욱 확고히 인식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나라 미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그 대답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하다.결국 나는 내가 겪은 과정 같은 것을 거쳐야만 우리나라 미술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확인할수 있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나와 똑같은 과정은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법을 찾아 끊임없는 노력을 했을때 그러한 개안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한국미술의 아름다움과 특성을 문자언어로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다.그러나 어떻게든 나는 그것을 말로 전달해 주어야만 하는데 그것은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나의 사명은 앞으로 우리나라 조형미술의 아름다움을 문자언어로 정리하는데 있다.그러나 그러한 나의 관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각자의 노력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결코 지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우리 국민전체가 이를 자각하고 노력할 때 과거·현재·미래의 미술이 되살아나고,국토의 자연환경과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 우리삶의 주변이 쾌적하게 될 것이다.<중앙박물관 학예실장>
1994-08-2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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