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추(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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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8-22 00:00
입력 1994-08-22 00:00
마치 대장간의 화덕에서 풀무질로 내뿜는 불길과도 같던 여름도 절기가 되니까 물러간다.절대로 사그러들지 않을 것같던 그 불볕더위도 거짓말처럼 풀이 꺾이게 하는 서늘함이 아침 저녁으로 스며든다.그 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외경을 느낀다.죽어라 냉방기를 가동하고 바다로 산으로 피서지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행동은 얼마나 속절없는 것이었는지 부끄럽기도 하다.얼마나 우리는 참을성이 없는가.

그 때문에 저지른 잘못은 또 얼마나 많은가.덥다고 군사작전지까지 몰려가 와글거리다가 최루탄세례를 맞고,나라를 지키는 우리의 귀한 자식들과 갈등도 벌이는 해괴한 짓까지 하고,산하란 산하를 모두 쓰레기로 뒤덮이게 만들고 여기저기서 터무니없는 사고를 잇따르게 하고….

그래도 지난 여름이 그렇게 부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가뭄이 바짝바짝 우리몸을 지져올 때 우리가 합심해 보인 극복의 드라마는 우리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현명함이었다.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따뜻함의 인자를 유전처럼 간직하고 태어난 우리는 생래적으로 성숙한 데가 있는 민족이다.이런 성숙과 미숙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보낸 그 여름이 남겨놓은 몰골 사나운 풍경들이 많다.더위의 혼미중에 저지른 이 부끄러운 흔적들을 이제 씻을 때가 되었다.

모든 것은 불법과 무질서,참을성 없음이 저지른 것들이다.이런 국민이 사는 나라는 경쟁력도 없고 발전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오염과 공해가 많은 나라는 관광객도 유치할 수 없게 된 것이다.나는 물론 내 자손들도 숨막혀 살기 힘든 땅이 어떻게 남들이 찾는 관광지가 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도 생활개혁을 통해 불법·무질서부터 추방하자고 당부하고 있다.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깨닫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여름이 남기고 간 흠을 깨끗이 쓸어내고 부끄러움도 모두 쓸어내자.사람을 철들게 하는 가을은 그러기 위한 계절이다.
1994-08-2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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