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보낸 편지①/민병석(굄돌)
기자
수정 1994-08-07 00:00
입력 1994-08-07 00:00
민주혁명 이후 인재부족난을 겪고 있는 이곳 사정으로 보면 그는 웬만한 주요직을 맡아 활동할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수 있다.그러나 그는 한국대사관의 고용원직을 택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해고의 위험이 별로 없고 괜찮은 액수의 월급을 미화로 받으며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장래설계에 도움이 되지않는 직업을 택했다는 나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지금 체코 국민은 장래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우선 생존을 해야 장래도 있는 것이지요.1989년 혁명후 지금까지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는것 자체가 기적입니다.정치가들은 서로 비난만 하고 있지 국민을 위한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국민 스스로가 그 기적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그래야만 다음 세대가 우리와 달리 떳떳한 생활을 할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말이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바로 우리 부모들의 1950년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러했듯이 체코는 지금 희생적 세대를 거치면서 재기의 발판을 굳히고 있다.내 자식들에게 떳떳한 인생을 만들어주겠다는 부모의 결의로 2000년대에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할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그때가 되면 미식씨는 외국대사관 운전기사가 아니라 사회의 중견으로 그리고 그의 아들들은 맹렬한 젊은 일꾼이 되어 체코를 또다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처럼 유럽의 6대 산업국으로 만들 것이다.용인줄 알았더니 지렁이더라는 우리에 대한 외국인들의 비아냥을 생각할때 혹시 일류대학을 나온 한국청년이 거꾸로 주한 체코대사관의 운전기사가 되어야하는 상황이 오는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1백퍼센트 기우이겠지만….<주체코대사>
1994-08-07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