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국측 6일 기념행사/노르망디 상륙50주년 “축제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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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6-04 00:00
입력 1994-06-04 00:00
◎미·영·불·가정상 4만5천여노병 참가/3백50개 프로그램 마련… 언론 대서특필

제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군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오는 6일로 50주년을 맞는다.

노르망디상륙 기념일 행사는 그동안 매년 열려왔지만 이번에는 꼭 반세기가 흘렀다는 상징성에다 생존해있는 참전용사들이 참석할수 있는 거의 마지막 대규모 행사라는 점때문에 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을 비롯해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고 캐나다·벨기에·네덜란드등의 국가원수들이 초청돼 있다.당시 참전용사 가운데 생존해 있는 은발의 「노병」 4만5천여명도 행사에 참석키 위해 「왕년의」 낡은 군복들을 찾아입고 속속 프랑스로 몰려들고 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지역에선 크고 작은 3백50여가지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부산한 거리 곳곳엔 미·영·불·캐나다등 연합군측 국기들이 나부끼고 있다.또 상륙작전 화보가 쏟아져나오는가 하면 참전용사들의 증언들이 연일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축제분위기는 마치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직후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참석하는 노병들은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후반이고 당시의 장교나 장군은 대부분 작고해 거의 찾아볼 수 없다.최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당시의 젊은 사병들이 대부분이다.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상륙했던 지점,그리고 4만명의 연합군이 안장된 묘지를 찾아 50년전 「D­데이」를 회상하기도 한다.

1944년6월6일 1천1백36대의 폭격기가 95㎞의 노르망디 지역(암호명 피카딜리 서커스)에 폭탄을 쏟아부으며 시작된 노르망디상륙작전에는 15만5천명의 군인과 2만대의 트럭이 투입됐다.그뒤 프랑스지역을 차례로 해방시킨 연합군은 2개월후인 8월26일 파리를 되찾기까지 20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독일군 피해는 그 두배였다.

50주년 기념행사로 관광업계는 때아닌 재미를 보고 있다.그동안의 기념행사는 3천여명 정도의 용사들이 모이는 3일정도 축제에 그쳤으나 올해는 부근의 칼레에 역이 개설된 영­불간 유러터널의 개통과 맞물려 엄청난 방문객이 밀려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패전국인 독일은 노르망디 지역에 6만명의 독일군 묘지가 있는데도 이번 행사에 초청되지 못했다.프랑스의 여론조사에서 헬무트 콜 독일총리 초청에 찬성이 35%인 반면 반대가 54%로 나타난데다 재향군인회가 강력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신에 독일은 오는7월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 행진(파리)에 자국의 군대를 파견할수 있게돼 체면을 살리게 됐다.미테랑대통령이 혁명기념일 퍼레이드에 유럽군단의 일원으로 독일군이 참가해주도록 콜총리에게 요청했던 것이다.대대적인 연합군의 승전 기념행사에 이어 독일군이 패전이후 처음으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파리=박정현특파원>
1994-06-0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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