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어머니 영정앞에/김학준 전국부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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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5-08 00:00
입력 1994-05-08 00:00
◎중기사고 날벼락에 우는 9세 소녀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명희는 그렇게 밝고 명랑할 수가 없었다.엄마가 처음으로 학교운동회에 와주신다니 더이상 기쁜 일이 없었다.그리고 누구보다도 명희를 예뻐해주는 이모랑 외할머니께서도 오신다니 하늘을 날 것같은 기분이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어제가 어린이날이었고 오늘은 운동회,그리고 또 어버이날이 오고­온통 신나는 일만 이어지는 요즘이었다.그래서 명희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부모님의 고마움에 보답코저 며칠전부터 서툰 솜씨이지만 자기가 학교에서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어버이날이 되면 엄마가슴에,할머니와 이모 저고리에 달아드리려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명희의 푸른 하늘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6일 인천 서흥국민학교 체육대회에 참석했다가 학교뒤편 담옆에서 점심식사도중 담너머 공사장에서 대형중기가 덮치는 사고로 어머니와 이모,그리고 외할머니를 한꺼번에 잃은 이 학교 2학년 나명희양(9).

뜻밖의 사고로 사랑하는 어머니와 외가식구들을 잃은 명희는 7일 인천시 동구 율목동 시립병원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서 끝없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꽃은 누굴 달아 주라고­.엄마!』

빈소에는 명희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려 마음먹었던 어머니·이모·외할머니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린이날 기념체육대회에서 엄마를 잃고 어버이날에 장례를 치러야하는 기막힌 상황이 닥친 것이다.더구나 아버지는 몇년전부터 정신이상증세를 나타내 명희는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동생등 한가정을 보살펴야 하는 소녀가장이 돼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건설회사의 안전을 무시한 공사로 저 어린 것이 평생 멍에를 지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주윗사람들은 한결같이 비로 연약해진 지반위에서 공사를 강행하다가 일가를 몰살시킨 회사측을 원망하면서 고아가 된 것과 다름없는 명희의 앞날을 걱정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엄마….』

애써 어머니사진앞에 세우려는 빨간 카네이션은 자꾸 쓰러졌고 엄청난 비극을 참아내기 힘든듯 명희는가냘픈 어깨를 또다시 들먹이기 시작했다.
1994-05-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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