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은 지난일… GR·BR 대비하자”/과천경제부처의 기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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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4-06 00:00
입력 1994-04-06 00:00
◎“달라져야” 모종의 체질개선설 나돌아/“전문성 결여가 화근… 잦은 인사 없어야

경제부처가 모인 과천청사의 기류가 바뀌었다.「포스트 우루과이 라운드(UR) 대책」을 놓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다.뭔가 종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UR 이행계획서 파문에 따른 김양배 농림수산부 장관의 전격 경질은 쉽사리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격의 여진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경제기획원과 농림수산부가 함께 있는 청사 1동에는 공휴일인 5일 아침 일찍부터 대외업무를 맡은 직원들이 나왔다.초상집 분위기였던 농림수산부는 박상우 제1 차관보를 비롯,UR협상 담당 실무자 10여명이 나와 신임 최인기장관에게 보고하는 자료를 만들었다.경제기획원 대외경제국도 김호식 국장 등 실무자들이 출근했다.

UR협상을 맡았던 관료들에게 뼈아픈 것은 대외 협상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주요 현안을 다루는 정부부서 및 담당자들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UR협상이 진행된 지난 7년 동안 농림수산부 담당국장은 7명이나 바뀌었다.담당자가 5명 뿐인 이 부서에서 협상을 지속적으로 챙긴 사람은 사무관 등 실무진 한두 명 뿐이다.그만큼 인사가 잦았기 때문이다.한 직원은 『인사정책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지 않고서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고 탄식했다.

물러난 김장관이 국회 농림수산위에서 한 발언도 실로 충격적이다.『지난 해 UR협상 타결 때 국영무역이나 종량세 등의 보호장치가 있는 줄 몰랐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장관이 몰랐다는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이행계획서 작성 및 검증과정에서 실무자들이 그때그때의 문제점을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김장관이 물러난 이번 파동을 기득권을 의식한 관료들의 조직적인 「음해」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한 관계자는 보수적인 농림수산부가 지난해 UR협상에서도 제네바 대사관 및 외교관들에게 내용을 감추기에 급급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농림수산부 관료들은 펄쩍 뛴다.오히려 일부 부처에서 의도적으로 미국과의 서신교환(익스체인지 오프 레터스) 내용을 흘려 사태를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한 실무자는 『사태가 잘못됐다고 실무자의 재량사항을 정치쟁점으로 삼는다면 누가 소신껏 일하겠느냐』고 되받았다.

재무·상공자원 등 다른 경제부처들은 혹시라도 이번 일의 불똥이 튈까 숨을 죽이고 있다.몸을 사리는 것은 기획원도 마찬가지이다.그러나 대외협상의 조정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대응책 마련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기획원이 신경을 쓰는 것은 포스트 UR대책.조만간 다가올 그린라운드(GR)나 블루라운드(BR) 등의 경제전쟁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대외협력위를 대외경제조정위로 명칭을 바꾸고,참석장관 수를 줄여 기민하게 대처하려는 것도 이같은 시도이다.

이번 일로 큰 홍역을 겪은 정재석부총리나,전임과 똑같이 내무관료 출신으로 자리를 뒤이은 최인기 장관이 모종의 혁파를 단행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그러나 많은 관료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외 경제정책도 이젠 대국민 홍보와 설득까지도 염두에 두고 완벽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정종석기자>
1994-04-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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