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검사 “무죄땐 사표 내려 했다”/성종수 사회부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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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3-16 00:00
입력 1994-03-16 00:00
◎“박철언피고 수사 1년은 가시방석”

14일 하오 박철언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서울형사지법 311호 법정.

박피고인을 기소한 홍준표검사의 안주머니에는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

무죄가 선고됐을 경우 낼 요량으로 준비한 사직서였다.

『박피고인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동안 패배한다면 옷을 벗을 각오로 사직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홍검사는 그러나 사직서를 낼 필요가 없었다.재판부가 자신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재판에서 이긴 것이다.

홍검사는 박피고인을 수사,기소한 뒤 선고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1년을 가시방석과 같은 나날이었다고 소회를 말했다.

직속상관이던 이건개 전대전고검장 등 기라성 같은 인사들의 비위를 추적,기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번민과 갈등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협박도 많았고 회유도 있었다.

그러나 홍검사는 집요한 수사 능력과 용기로 이를 극복했다.

『검사는 불법과 비위를 적발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적이 많습니다.특히 힘있는 사람을 수사할 때는 협박이 끊이지 않습니다.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철저한 직업의식과 용기뿐입니다』

박피고인에 대한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홍검사가 공명심에 사로잡혀 조작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과 질시까지 받아야 했다.

박피고인의 변호인단은 1심 7명,항소심 8명이었다.모두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다.이들은 갖가지 주장을 들며 홍검사의 공소사실이 잘못됐음을 공격했다.

결심공판에서는 정덕진씨가 사건을 뒤엎는 양심선언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아 모두가 긴장하기도 했다.

검사출신인 박피고인은 증인을 직접 신문하는 등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승부는 홍검사의 승리였다.

홍검사는 검찰에 발을 디딘 이후 모두 4차례 사직서를 준비했다.

초임시절 충북 괴산군 국유지불법불하사건,조직폭력배 여운환사건,노량진수산시장 강제인수사건,그리고 이번 슬롯머신사건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사건을 사직할 각오로 수사하게 될지가 주목된다.
1994-03-1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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