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기」와 「여쭙기」(송정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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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3-10 00:00
입력 1994-03-10 00:00
최근에 있은 한 기자회견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내외신기자들이 함께 참석한 이자리에서 대부분의 한국기자들은 「묻겠습니다」며 질문을 하는데 비해 일본기자 한사람은 「여쭈어보겠다」는 깍듯한 경어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하기는 그 일본기자는 우리기자들보다 더 정확한 우리말을 쓴다고 생각될 만큼 우리말을 잘했다.그런 그가 「여쭙다」정도의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신기할 것은 없을지 모른다.그렇더라도 우리기자가 「물을」뿐인데 외국인이 공손한 어투로 「여쭙는다」는 것은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누구나 알다시피 「여쭙는다」는 말은 「묻는다」의 높임말이다.그렇다면 한국기자들에게 보다 일본기자에게 회견상대가 더 높았다는 뜻일까.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아마도 우리 언론이 경어에좀 인색한 것은,특히 공직자에 대해서 더 그런 것은 「아첨」에 대한 결벽때문일 것이다.유난히 그부분에 대한 결벽이 강한 것이 우리니까.

그렇다면 일본기자는 왜그렇게 공손한 경어를 썼을까.우리기자가 일본의 「높은 사람」에게 그들의 말로 그런공경어를 사용했다면 아마도 상당한 빈축을 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기자가 그런 말씨를 쓴 까닭을 두가지쯤 생각해 볼 수있겠다.첫째는 그가 한 질문에서 찾아낼수 있겠다.일본의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한국시장을 언제쯤 완전히 열겠느냐는 것이 질문의 내용이었다.국익에 관한한 언론도 정부와 똘똘 뭉치는 것이 일본의 특징이다.되도록 빨리 한국의 대중문화시장을 전면개방시키려는 것이 일본의 조야가 노리는 일이므로 공손하고 깍듯한 예의로 우리 마음을 사려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두번째 이유로는 혹시 우리말의 경어가 지닌 오묘한 맛에 그가 반한 탓은 아니었을까?외국어로서의 한국말을 익힌 사람이라면 한국말이 지닌 경어는 확실히 경이롭고 매력있는 어법일 것이다.

한 30년쯤 전의 일이다.미국에 이민간 한 한국인이 교포자녀를 위해 한인학교를 열고 한국말 교육을 위한 자료수집을 하러 왔을때 만난 적이 있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 강건너 불처럼 여겨지던 『청소년의 문제』가 미국서는 한창 심각해지고 있을 때였다.그점에 관해 그 교포는,우리말에 있는 경어때문에 우리에게서는 청소년문제가 그다지 심각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맞대놓고 『했니?안했니?』하고 묻는 청소년과 『하셨습니까?안하셨습니까?』하고 「여쭙는」한국 청소년이 같겠는가 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우리의 변화를 보며 두고두고 그 말을 음미해보게 했다.

우리의 경어는 상대방을 높이는 기능만을 가진 말이 아니다.말을 품위있게 해주고 적절하게 믿아주고 조심스럽게 삼가는 태도를 갖게하는 절도와 예의의 표현이다.겸손도 나타내지만 때로는 상대방에게 무례를 허락하지 않는 금도의 방편도 된다.

일본 말에도 경어가 있지만 우리의 것과는 다르다.섬세하고 격식이 예술처럼 짜임새가 있는 우리 경어에서 색다른 맛을 느꼈을 것이다.또한 그런 경어의 기능에 그는 각별한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그 양쪽효과를 다 생각하여 공손하게「여쭙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어쨌든 이렇게 기능이 많은 것이 우리의 경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우리의 경어가 형편없이 황폐해지고 있다.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에나 유용했던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런 부분은 저절로 도태되게 마련이므로 아름답게 살려쓰는 것이 마땅하다.경어는 특히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는 질서의 원천같은 것이다.가족 상호간의 인격을 존중하고 참을성과 절제를 실천하는 훈육의 역할을 중요하게 해낼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능을 가진 어법이다.지금은 온 세계의 나라들이 가정의 붕괴위기와 직면해 있다.그래도 우리는 아직 마지막 위기에는 와있지 않은 몇안되는 나라라고 할수 있다.그 예방역할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것이 우리 언어문화의 강점이다.그런 것이 국제경쟁력도 충분히 분담할 수 있는 강점이다.그런 강점을 그냥 무너지게 하지 않는 노력이 지금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본사 고문>
1994-03-1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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