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한」 떨친 감격의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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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2-22 00:00
입력 1994-02-22 00:00
올해로 역사 70년을 맞은 서울YWCA 부설 기청 공민학교가 21일 제54회 졸업식을 갖고 83명의 늦깍이 졸업생을 배출했다.이번 졸업생은 지난 91년 입학했던 1백80명 가운데 절반도 채 안되는 숫자이나 모두 크나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만하다.
젊게는 2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배의 주부들로 구성된 이날의 졸업생들은 때늦은 졸업의 기쁨이 더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웠지만 행여 누가알까 두려워 쉬쉬하며 조용히 서로를 격려할 뿐이었다.그것은 대부분의 재학생들이 그동안 자신이 문맹자임을 주변에,심지어는 가족들에게조차 숨긴채 살아왔기 때문으로 졸업생들의 그런 모습은 보는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날 50대의 한 졸업생은 그동안 글을 몰라 남앞에 서면 괜히 가슴이 두근 거렸고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갔을땐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돋보기를 안가져와 잘 안보인다는등의 이유를 달아가며 남에게 부탁을 하는등 고통이 많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기뻐했다.또 다른 50대의 한 주부는 남편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몰라 부부모임이 있을때면 웃기만 할뿐 말조차하지 않았던 자신의 그간 심적 고생을 털어놓은후 뒤늦게나마 한을 풀게돼 기쁘다고 밝혔다.
기청 공민학교에서 교사로 10여년동안 이들을 가르쳐온 한문자씨(52)는 『아주 드믈게는 남편의 안내를 받아 입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족들 몰래 매일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졸업생 모두들 그 어려움이 너무도 컸다』고 설명했다.또 매일 일정한 시간에 큰가방을 들고 누가 볼세라 몰래 동네를 빠져 나오다 이상한 사람으로 경찰에 신고된 때도 있다고 한다.재학생은 46%가 50대·60대가 13%로 6·25전쟁때 공부할 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가장 많다.그러나 40대가 28%,30대도 10%나 되어 기청 공민학교 실무자들은 정부통계와 달리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고있다.이는 올해도 2백30명의 신입생을 뽑았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강생들이 몰려 선착순 마감을 한데서 입증이 된다고.
부녀자들의 문맹퇴치를위한 야간 강습소로 19 24년 출발한 기청 공민학교는 47년 국민학교 과정을 3년으로 단축해 마치는 교육기관으로 정식 인가를 받아 지금까지 총 2천3백76명의 졸업생을 냈다.<장경자기자>
1994-02-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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