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국외교와 우리의식/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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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2-19 00:00
입력 1994-02-19 00:00
16∼18일(한국시간) 미국 CNN 방송은 종일 보스니아사태와 미­일 사이의 「포괄 무역협상」의 결렬을 번갈아가며 머리기사로 보도했다.북한의 사찰수용은 한때 두번째 기사로 올랐다가 이젠 수그러든 상태다.

미키 캔터무역대표부(USTR)대표등 미경제부처 고위관리들은 17일 잠시 한승주외무부장관을 만난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내내 일본과의 협상 결렬에 따른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한장관은 캔터대표와 회담을 마친뒤 『미국이 무척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그리고 『뭐 묘안이 없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장관급회담에서 조차 요즈음은 서로 꺼릴게 없을 만큼 모두 국익에 철저하다는 느낌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가려,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어 그랬을지 모르나 한장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캐나다 방문은 무심하게 스쳐갔다.16∼17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의 2차 경제협력대화(DEC)도 마찬가지였다.모두들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그러다 보니 회의에 참여했던 관리들도 「신바람」이 없어 보인다.

꼭북핵에 가려서일까.그 이면은 정말 없는 것인가.한장관이 지난 15일 만난 울레 캐나다외무장관은 통상분야까지 함께 담당하고 있다.그는 회담이 끝난뒤 『한국과 중진국으로서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중진국 협력관계」­우리들 스스로는 벌써 몇년전부터 수없이 써왔지만 외국인으로부터 들으니 기분 좋은 외교적 수사였다.

세계는 이미 우리를 중진국으로 간주하고 있다.그러나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기초로 한 분석이라면 중진국은 정치·안보·국제화의 수준과 외교등을 포괄하는 국력의 총체적 역량을 나타내는 개념이다.한데 우리의 의식엔 「약소국 외교」는 있어도 「중진국 외교」는 없는 것 같다.

생떼를 쓰고 악착같이 밀어붙이면 뭔가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국제관계를 대해왔다.그것은 관리들도 비슷하다.괜히 중진국이라고 자처했다간 협상에서 특혜는 커녕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지금까지는 그게 어느 정도 통해왔고 성과도 있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우리를 보는 눈도 그렇다.오는 96년이면 우리도 선진국들의 경제협력체인 OECD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된다는 사실이 섬광처럼 떠오른다.<워싱턴에서>
1994-02-1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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