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문화로 국제화 열자/김정열 문화부장(데스크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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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1-23 00:00
입력 1993-11-23 00:00
요즘 문화계 일각에서 몇가지 고무적인 현상이 일고있다.얼마전 「서편제」가 상해영화제에서 감독및 여우상을 동시에 수상함으로써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은바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세계 20개 국제영화제에서 줄줄이 초청,상영케 됐다고 한다

○각국서 우수성 인정

또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93퐁피두 한국영화제」에서 우리영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찬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이 영화제에서 상영중인 몇몇 작품은 유럽권 수출상담이 진행중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한국영화의 예술성과 산업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이 「영화사건」은 침체된 한국영화계에 활력과 가능성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영화 뿐이 아니다.TV역사드라마「삼국기」 전52부작이 중국에 처녀수출되었으며 만화영화「꿈돌이」는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이다.제한된 숫자이긴 하지만 세계 유수의 국제미술행사인 「파리 살롱 도톤느」와 「런던 테이트 겔러리」잔치에 국내화가들이 초청받아 한국의 문화역량을 뽐내기도했다.오랜 산고 끝에 한 미술사학자가 미국에서 영문책자로 출간한 「18세기 한국미술」이 그간 한국을 업수이 여기던 미국언론계와 학계의 시각을 바꿔놓고 있다.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활동중인 정명훈씨와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란 격찬을 받은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국제적 성가는 새삼 거론할 나위도 없이 확고하다.

이같은 일련의 모습은 우리문화의 세계성의 획득,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속에 한국문화가 자리잡아 당당히 어깨를 겨룰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것 이랄수 있다.그러나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세계속에 한국을 심는 이와같은 문화인력들이 아직은 그 수가 미미해 손가락에 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유구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지녔으면서도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 모두의 문화적 인식과 기반이 폭넓게 성숙되지 못한 까닭이다.「선진대열 진입을 위한 경제제일주의」로 우리는 지난 몇십년동안 문화실조를 자초하며 살아온 것이 그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특히 국가의 발전전략이 서구산업문명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마저 잃어온 것이 저간의 실정이다.

○전통 실종현상 심각

우리가 지금 어떤 모양인가를 한번 살펴보자.

TV를 보면 온통 국적불명의 CF와 쇼프로가 판을 친다.무용수들의 자극적인 옷차림이며 격렬한 몸짓에 이르면 도대체 우리가 어느 나라에 와 있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한국적 윤리의 틀과는 거리가 먼 외도소재의 드라마가 경쟁적으로 합라화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흘러 들어온 노래방에는 청소년과 직장인들로 목하 성업중이다.카페와 피자집은 더 이상 대학가 주변의 전유업이 아니다.주택가 깊숙이 파들고 있다.

또 백화점마다 진열돼있는 외제화장품과 의류점에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분주하기만 하다.올해들어 이를 수입하는데만도 3억1천5백만달러를 써버렸다고 한다.김치 없이는 살아도 햄버거와 콜라 없이는 살지 못하겠다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으며 젓가락 보다는 포크를 즐겨 쓰는 어린이도 자주 눈에 띈다.외래문화가 우리의 고유문화를 잠식,문화의 주체성을 희석시키는 현상은 의·식·주 모든 분야에 넓게 번지고 있다.전통의 심각한 실종 현상이다.무분별한 외래문화의 유입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 전통문화의 공동화마저 우려된다.



○우리얼 잃지 말아야

우리가 가야할 국제화의 길은 이래가지고는 열리지 않는다.국제화는 세계속의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따라서 국제화의 길을 여는 첫걸음은 남의 것을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따르기 보다는 자기 것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배타적·폐쇄적 자족문화로서의 전통고집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얼과 모습을 잃지않고 세계와 융화하고 우뚝 설수 있는 자주문화를 먼저 꽃피우자는 것이다.그것은 일부 문화예술인들의 노력과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다.우리 모두가 그 대열에 서도록 해야 한다.
1993-11-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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